[ESSAY] 꽃피는 봄날, 시골 화랑에서

  • 박연주 양평 갤러리서종 대표
  • 이철원

    입력 : 2012.04.26 23:03

    박연주 양평 갤러리서종 대표

    "벚꽃 피던 날 첫 손님 젊은 남녀 '간소한 결혼식 후 그림 걸고파'

    문득 생각난 10년 전 이웃 할머니 아끼던 그림 손주에게 주고서

    같은 작가 전시회 매일 찾아와 사람들 마음 꽃 피우는 그림의 힘"


    어느새 마당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고, 키 큰 목련도 가지가 휘도록 하얀 꽃을 달고 서 있었다. 겨우내 병석(病席)에 누워 계셨던 어머님이 며칠 전에 돌아가시자 경황 없이 장례를 치르느라 꽃 핀 줄도 몰랐다. 슬픔을 채 추스르지 못한 채 서둘러 화랑(畵廊)에 돌아오자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이 저 꽃들이었다. 내 슬픔을 아는 듯 여느때보다 더 정성껏 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아무나 편하게 흙 묻은 발로도 출입하는 이 시골 화랑은 이런 봄날이 가장 좋을 때인데, 개관 15년 만에 처음으로 현관문을 사흘이나 닫았다가 열었다. 오늘의 첫 손님은 그저께부터 그림을 보러 오겠다고 전화를 해온 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나이 어린 젊은이들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로 자세히 보니 몇 번인가 우리 화랑에 들른 적이 있다. 이곳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왔다고 한다. 신부 될 사람이 그림을 좋아해서 결혼 기념으로 신혼집에 걸고 싶은 그림을 사러 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푼 두푼 알뜰하게 저축한 돈과 양가 부모님이 보태주신 자금으로 13평 아파트를 마련했고, 결혼식은 아주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예물도 작은 금반지 하나를 교환하는 것으로 끝내고, 가구도 꼭 필요한 것만 들여놓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신부가 좋아하는 그림을 사서 걸기로 합의했단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렇게 말하며 기쁨을 숨기지 않는 이들이 참 예뻐 보였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가난했던 결혼 무렵의 내 젊은 날도 문득 떠오르고, 이들 또래가 흔히 하는 결혼식의 요란한 허례허식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신부가 점찍어둔 그림은 그들이 짐작했던 가격보다 훨씬 비싼 것이라 난색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저 주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한 일이고 옳은 일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같은 작가의 판화 작품을 권했다. 비싼 그림은 훗날 좀 더 여유가 생길 때 사면 된다고, 아직 젊으니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그들도 잘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게만 끝낼 수는 없었다.

    문득 이웃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10년 전쯤 그때도 늦은 봄날이었다. 우리 화랑은 봄철 기획전으로 나의 대학 스승이었던 원로작가의 초대전시회를 열었다. 관람객 중에 초로(初老)의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전시회 후반의 일주일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품을 보러 왔으니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려 손님이 거의 없던 어느 날 나는 차 한 잔을 나누며 그 할머니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의 아내였던 할머니는 그림을 좋아했다. 특히 지금 전시 중인 원로작가가 초기 작품전을 열었을 때 결혼반지를 팔아 그림 한 점을 사서 집에다 걸어두고 항상 보았다고 한다. 그분은 남편이 은퇴한 후 우리 이웃 마을에 정착하여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여덟 살 난 손주가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웬일인지 그 그림 앞에 서서 떠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손주 녀석이 그 그림을 자기한테 달라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할머니는 "내가 죽고 나면 너한테 주마"라고 근근이 달래서 보냈다. 그날 밤 할머니는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손주가 달라는 것을 왜 바로 주지 못했는지, 내내 마음이 걸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머니는 그 작품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아들네 집으로 갔다. 손주 방에 그것을 걸어주고서 돌아왔다. 하지만 작품을 걸었던 빈 벽을 바라볼 때마다 할머니는 마음까지 텅 빈 듯했다.

    그런 나날이었는데, 마침 자기 마을에서 이 작가의 전시회 현수막을 보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보고 간다는 얘기였다. 한 작품이 마음에 들어 사고 싶지만, 그림값이 터무니없이 모자라 어쩔 수 없다고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할머니가 다시 와서 봉투를 내밀었다. "적금을 해약해서 조금 더 보탰으니 작품을 꼭 사고 싶어요." 그 순간 내 마음은 결정을 내렸다. 가격을 떠나 이미 이 작품의 주인은 정해졌다고. 다음날 할머니 댁으로 가서 그 작품을 걸어드렸다. 할머니가 활짝 핀 꽃처럼 웃으셨던 것을 기억한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만화가 한 분이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이제는 그 할머니도 우리 어머니 연세쯤 되었으리라.

    나는 두 젊은이의 결혼을 축하하며 내가 그린 작은 소품 한 점을 선물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뜻밖의 선물에 고마워하고 기뻐하며 돌아가는 그들을 축복하며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돌아서니 마당에는 만개(滿開)했던 목련 꽃잎들이 벌써 하나 둘 지고 있었다. 꽃피는 봄날은 무척 짧지만 감동하기 좋은 날이다. 그림에도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종종 사람들의 마음을 꽃피게 하는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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