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피아니스트들이 모였다, 최고 스승을 위해

조선일보
입력 2012.04.26 03:15

정진우 첫 독주회 60주년
신수정·김용배 등 헌정연주… '정진우 사단' 벌써 100여명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청년은 1950년 8사단 군의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듬해 강원도 성지봉에서 그의 부대는 퇴로를 차단당한 채 중공군과 맞닥뜨렸다. 첫날밤 가까스로 적군의 인해전술을 막았지만, 둘째 날 밤에는 전열이 와해됐다. 패주 도중 군화마저 잃고 눈송이를 먹으며 연명하던 청년은 양쪽 발에 심각한 동상을 입었고, 발가락과 발등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한국 피아노 역사는 그 상처투성이 발에서 시작됐다. 그 발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정진우(83) 서울대 명예교수. 정 명예교수는 1952년 11월 15일 피난 중이던 부산의 이화여대 강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등으로 첫 독주회를 열었다. 그에게는 '소생한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이 붙었다. 어릴 때부터 배운 피아노와 부모가 권유한 의사란 직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더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고 결심했고 빈으로 유학을 떠났다.

첫 독주회 60주년 기념 음악회를 여는 한국 피아니스트의 대부 정진우. 그는“수술을 받고 첫 독주회를 열면서 더는 흔들리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음연 제공
첫 독주회 60주년 기념 음악회를 여는 한국 피아니스트의 대부 정진우. 그는“수술을 받고 첫 독주회를 열면서 더는 흔들리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음연 제공
올해는 한국 피아노 교육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정 명예교수가 첫 독주회를 연 지 60주년 되는 해. 그의 제자들이 헌정 음악회를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다.

피아니스트 신수정(전 서울대 음대 학장), 김석(경희대 명예교수), 김용배(전 예술의전당 사장), 강충모(미국 줄리아드 음대 교수), 문용희(피바디 음대 교수) 등 그의 제자들도 어느새 한국 피아노 음악의 원로와 중진이 됐다. 신수정 전 학장의 제자로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 입상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까지 한국 피아노 음악계에서도 최대 계보로 꼽히는 '정진우 동문회'도 3대째를 맞았다.

'정진우 동문회'는 정 명예교수가 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1년부터 매년 정월 초에 열었던 사제(師弟) 모임에서 출발, 지금은 100여명 수준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음악계에서는 '정진우 사단'이나 '정진우 그룹'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 명예교수는 "동문으로서 우정을 굳이 숨길 필요 없이 간직하겠다는 의미에서 모임을 공개화했다"고 말했다.

이날 음악회에는 그의 제자와 동료 67명이 차례로 무대에 선다. 이대욱 한양대 교수의 지휘로 피아니스트 16명이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의 1·4악장을 연주하는 무대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 이에 앞선 1부에서는 정 명예교수도 제자 11명과 함께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연주한다. 장성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흐뭇한 심경이 꼭 이날 풍경일 것 같다.

▲정진우 교수 독주회 60주년 기념 음악회, 3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3436-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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