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장애 극복한 판사·앵커 뒤에훌륭한 시스템 있었다

    입력 : 2012.04.24 03:13

    사법연수원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씨
    모든 교재·기록 음성 변환
    시험 시간 약 2배 제공

    KBS
    앵커 이창훈씨 위해
    장애 등급·배려 사항 공부
    점자프린터 등 장비 마련

    동료로 곁에서 지내보니
    장애 대한 편견 사라져
    정부, 유형별 직업 개발
    기업, 의무고용률 지켜야

    21세에 갑자기 얻은 루게릭병.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 일부뿐. 목소리까지 잃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던 스티븐 호킹(70) 박사가 '세계적 물리학자'가 된 데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호킹 박사가 간단한 버튼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인텔은 음성변환장치(전용 PC)를 개발, 지원하고 있다. 호킹 박사의 전용 PC는 그의 건강 상태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장애의 벽을 허문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초의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27)씨가 KBS에 채용된 데 이어, 올 2월에는 최영(32)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판사로 임용됐다. 장애인의 직업적 한계를 뚫은 이 최초 기록 뒤에는 숨은 조력자와 지원 시스템이 함께하고 있었다.

    ◇모범 사례 찾아 일본으로 떠난 사법연수원 교수진

    2008년 10월, 경기도 일산의 사법연수원 교수진 8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최초의 시각장애인 사법시험 합격자인 최영씨의 적응을 도울 태스크포스(TF)팀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수업을 받고, 시험을 치르며, 현장 실무수습을 할 것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 해외의 비슷한 사례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기획총괄교수(판사) 2명이 2009년 1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1981년 시각장애인 판사를 배출한 일본의 20년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두 교수는 일본 사법연수소를 둘러보고, 시각장애인 변호사 오오고다 마코토씨를 직접 만났다. 일본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교재와 기록을 미리 녹음해서 테이프로 제공하고, 평균 시험시간의 1.3~1.7배를 주고 있었다. 미국 로스쿨 사례도 참고했다. 미국에선 1996년 이미 80여개 로스쿨에서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이 의견을 반영, 장애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수법을 갖추고 있었다.

    그 후 사법연수원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화장실·학습실을 마련하고, 문자인식프로그램과 전용노트북을 구입했다. 78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다. 최영 판사는 고3 때 점차 시력이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 법대 입학 후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그는 현재 밝기만 구별할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후천적으로 얻은 질병이라 점자를 모른다. 이 때문에 사법연수원 교수와 직원들은 모든 교재와 기록을 음성으로 변환되는 텍스트 파일로 준비했다. 연수생이 보는 두꺼운 기록 자료들을 일일이 타이핑한 뒤, 음성변환파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최영 판사의 지도교수였던 성수제 판사는 "교수들은 수업 내용을 칠판에 적을 때 반드시 말로 풀어서 설명했고, 시험 문제도 두 번 출제했다"며 "문제는 동일했지만, 등기부처럼 표나 그래프로 표현된 자료를 최 판사가 볼 수 없기 때문에, 교수들이 직접 텍스트파일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최 판사는 음성 파일로 전환된 문제를 듣고, 노트북으로 답안을 작성했다. 시험 시간은 일반 연수생의 1.5~2배로 제공했다. 직접 시험문제를 들어본 성 판사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인데, 이를 귀로만 듣고 문제를 이해하고 답안을 작성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며 "최 판사는 연수원 입학 전 1년 유예기간을 가지며 듣는 연습만 했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파이고, 실력도 뛰어나 분명히 신뢰받는 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자를 응원했다.

    사법연수원 41기생 1030명 가운데 상위 40위권 내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현재 서울북부지법 민사 11부 배석 판사로 일하고 있다.

    ◇태스크포스(TF)팀 꾸려 A부터 Z까지 진행한 KBS

    지난해 4월, KBS는 '장애인 동행 선언'을 발표하고, 장애인 뉴스 앵커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뉴스 제작3부 내 기자 5명이 TF팀원으로 선발됐다. 이들은 장애인의 정의, 등급 분류 기준, 장애 경중에 따른 불편한 정도 등 장애인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을 만나 장애인을 배려할 부분과 주의사항도 배웠다. 당시 TF팀을 총괄하던 임흥순 과학재난부장은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없어 모든 것을 새로 구상해야 했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단독 뉴스 코너를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앵커는 이창훈씨가 유일하다. 영국의 민영방송 '채널5'가 지난 2009년 11월, 안면변형장애인을 일주일 동안 앵커로 기용한 적이 있을 뿐이다.

    채용공고 제작부터 난관이었다. 모집 광고를 위해 TF팀은 KBS 내 20개 부서에 공문을 돌려 협조를 구했다. 광고 스토리를 짜고, 디자인을 하고, 화면을 촬영하고, 이를 시각장애인이 들을 수 있도록 음성전환 프로그램으로 변환하는 등 40초짜리 채용 공고를 위해 다양한 부서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앵커 선발을 위한 기준도 직접 마련했다. 임 부장은 "장애 종류나 경중을 구별하지 않고 서류 접수를 하였기 때문에, 이들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기준이 필요했다"고 귀띔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응시자는 523명 중 단 30명. 변호사, 올림픽 메달리스트, 통역가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2차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이 중 10명이 심층면접을 거쳤고, 이창훈 앵커가 최종 합격했다. 내부에선 "시각장애인이 과연 뉴스 진행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일부는 "녹화를 하자"든가, "뉴스를 진행할 때 검은 선글라스를 끼워야 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앵커의 노력과 열정을 본 이들은 이내 마음을 열었다.

    편의시설과 장비도 마련했다. 최신형 점자정보단말기(기사를 점자로 변환해 나타내주는 기계), 점자 프린터를 구입하고 보도국 내에 점자블록을 설치했다. 설비에만 2000만원을 투자했다. 이 앵커의 이동과 업무 편의를 도울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했다. 이 앵커를 위해 KBS1TV'뉴스12'에 '이창훈의 생활뉴스'란 별도의 코너도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7일, 첫 방송을 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임 부장은 "더 많은 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장애인 앵커를 해마다 선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 명 채용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

    최초의 시각장애인 판사와 아나운서를 배출한 사법연수원과 KBS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사내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장애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다. 최 판사와 사법연수원 생활을 함께한 변호사는 "처음엔 불편할 줄 알았는데, 곁에서 지켜보니 공부도 일도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면서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더라도 더 많은 장애인이 사회에 진출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인데, 친구로, 동료로 함께 지내봐야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다"면서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자발적으로 지키고, 정부는 각 장애유형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를 연구,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대학교 재활의학과 나운환 교수는 "학생 때부터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적합한 교육은 장애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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