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暗_청각장애인 청강문화산업대학 안태성 前 교수

    입력 : 2012.04.24 03:13

    교수 임용 등 매순간 불이익… 장애학생 위한 지원 없어

    지난해 제4회 장애차별 만화전 개막식 인터뷰를 하고있는 안태성 전 교수.
    안태성(53) 전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국립서울농아학교에 나간다. 방과후교실에서 농아인 학생들에게 만화를 가르친다. 작업할 돈도 없고, 의욕도 나지 않아 작품활동은 쉬고 있는 상태다. 한때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치던 교수였던 그는 학교의 부당해고에 맞서 지난 5년간 긴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인권위 진정제기, '해직처분무효확인청구각하결정취소' 행정소송 대법원 승소, 복직 위한 행정소송 1,2,3심 승소, 대학 측 항소…. 소송은 끝났지만 상처는 오래 남았다.

    그는 선천적 청각장애 4급으로, 왼쪽 귀는 전혀 안 들리고 오른쪽 귀는 큰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별명은 '귀먹쟁이'. 야간공고 졸업 후 공장에 다니던 그는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목사의 소개로 동양화가를 만나 미술과 연을 맺었다. 24세에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 배려가 별로 없었어요. 교수가 1시간 내내 강의를 해도, 들을 수가 없으니 쉬는 시간에 친구들 노트를 빌려 베끼기도 했어요. 실기는 넘어가도 교양과목은 그냥 포기하고 출석체크만 한 후 뒤에 앉아 엎드려 잤어요."

    돈이 없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그는 대학 3학년 때 만난 아내 이재순(46)씨가 선물하면서 보청기를 처음 사용해보았다고 한다. 사회에 직접 부딪쳐본 그의 삶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겪어도 참아야 하는 것'투성이었다. 1999년 그는 청강문화산업대에 애니메이션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채용공고에선 분명히 전임강사였음에도, 임명장엔 '전임강사 대우 6개월'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월급도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냥 감수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배려도 없었다. 강의를 위한 보청시스템이나 확성기 같은 지원도 전무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는 청각장애인이니, 여러분이 나에게 좀 크게 얘기하거나 내가 가까이 갈 수 있게 불러달라. 장애인인 나도 이 자리까지 올랐으니 여러분도 열심히 해라"고 항상 말했다. 강의평가는 꾸준히 좋았다고 한다.

    그는 "2001년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 만화창작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초대 학과장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교수진을 꾸리는 과정에서 학교 측과 갈등을 겪으며 노골적인 차별과 배척을 받다 결국 2007년 재계약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장애학생들의 차별 경험도 털어놓았다. 안씨는 "청각장애 학생 두 명이 장애인 특례입학으로 들어왔는데, 이 아이들이 수업을 들으려면 타이핑 도우미 같은 지원이 필요함에도 학교 측에선 전혀 배려가 없었다"며 "그 아이들은 학교에 줄기차게 요구하다 결국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장애인의 노동권 차별과 사회의 편견에 맞선 점이 인정돼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에겐 사회라는 벽은 여전히 높고 차가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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