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밍 회장

중국에 내란설이 나돈 지난달 19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중앙정법위 서기)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와 각별한 관계인 쉬밍(徐明) 다롄스더(大連實德) 회장의 신병 확보를 둘러싸고 베이징 시내 한 가운데서 쟁탈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 전 서기의 비호세력으로 꼽히는 저우 상무위원 측과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주장하는 원 총리 측이 충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우 상무위원이 산하 무장경찰 병력을 동원해 중국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를 포위하자, 중난하이 경호를 담당하는 친위부대인 인민해방군 소속 8341부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소동이 '내란설'로 확대돼 퍼졌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명경월간(明鏡月刊)은 20일 발행된 최신호에서 "원 총리의 지시를 받은 중앙기율검사위가 저우 상무위원 산하 공안국이 확보하고 있던 쉬 회장의 신병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군과 무장경찰 병력이 대거 증원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쉬 회장은 저우 상무위원, 보 전 서기의 자금줄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향응도 제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원 총리의 부인 장페이리(張��莉)에게도 적잖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으며, 장페이리는 한때 쉬 회장을 사위로 삼으려고 했다는 설도 나온다. 쉬 회장이 양측과 맺고 있는 이런 각별한 관계가 신병 쟁탈전의 요인이 됐던 것으로 명경월간은 전했다.

원자바오(사진 왼쪽), 저우융캉.

쉬 회장의 신병을 먼저 확보한 것은 저우 상무위원이었다. 보시라이이 전 충칭시 서기 해임이 발표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4일 쉬 회장을 공안국으로 데려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원 총리는 지난달 19일 측근인 마위(馬馭)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에게 친서를 줘 공안국으로부터 쉬 회장의 신병을 인수해올 것을 지시했다. 보시라이 사건과 관련해 쉬 회장을 조사한다는 명목이었다.

저우 상무위원은 이를 거부했다. 마 부서기는 이에 저우 상무위원 아들인 저우빈(周斌)의 사업 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저우 상무위원을 협박했다. 저우 상무위원은 곧바로 공안국에 대한 경비 강화를 지시하고, 쉬 회장을 다른 곳으로 이송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중앙기율검사위는 쉬 회장을 태우고 나온 공안국의 이송 차량을 도중에 세워 쉬 회장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쉬 회장의 신병을 뺏긴 저우 위원은 무장병력을 동원해 중앙기율검사위가 있는 중난하이를 포위했고, 중난하이 경호를 담당하는 8341부대가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양측 간부들은 한밤중까지 고함을 지르며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양측은 당시 모두 무장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8341부대가 무장경찰 병력을 중난하이 부근에서 몰아내면서 일단락됐지만, 저우 상무위원은 무장 병력 동원 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자술서를 썼다고 베이징 정가 소식통은 전했다. 저우 상무위원은 보 전 서기의 충칭시 서기직 해임을 논의한 상무위 회의에서도 9명의 위원 중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관영 언론은 지난달 31일 쉬 회장이 경제 범죄 협의로 중앙기율검사위에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 보도한 바 있다. 재미 중국 민권운동가인 탕바이차오(唐柏橋)는 "중국 당국은 대규모 충돌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8341부대가 무장경찰 병력을 중난하이에서 몰아낸 사실은 인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