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59] 백열전구

조선일보
  •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입력 2012.04.18 23:0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밤을 낮처럼 환히 밝혀주는 전구는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발명품 중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구의 발명자가 토머스 에디슨이라 믿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필라멘트(가는 금속선)에 전류를 흘려주면 열과 함께 빛이 나오는 전구의 원리는 19세기 초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고온에서도 쉽게 녹지 않는 필라멘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 드디어 두 사람이 거의 목표에 근접했다. 영국의 조지프 스완은 탄소 필라멘트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 경우 시간이 지나면 전구 안에 검은 침전물이 생겨서 조명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는 탄소 덩어리가 가열될 때 그 안에 갇혀 있던 공기가 바깥으로 나오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진공 상태에서 탄소 필라멘트를 만들어야 했다. 스완은 1879년 말에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에디슨은 백금 필라멘트를 시험하고 있었다. 백금 필라멘트는 고온 상태가 지속되면 녹아내렸지만,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그는 성급하게 발명을 완수했다고 신문기자에게 알렸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스완이 발표한 논문을 읽었고, 결국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전구를 만들어 시연을 했다. 말하자면 스완의 아이디어를 훔친 셈이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에디슨은 오히려 스완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절했다고 법원에 고소했다가 패소했다. 법원의 화해 권고를 받아들여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섞은 '에디스완' 전구를 만들어 판매했다.

냉혹한 사업가인 에디슨은 몇 년 후 '저항력이 강한 탄소 필라멘트'는 자신이 발명한 것이라 주장하며 소송을 내 승리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스완이 이미 개발한 것을 약간 개선한 것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는 에디슨이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실험일지의 해당 부분을 찢어버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에디슨이 전구 발명의 공을 독차지한 데에는 미디어의 힘이 컸다. 어느 날 저녁 에디슨이 우연히 검댕을 만지작거리다 돌연 아이디어가 떠올라 탄소 필라멘트를 개발했다는 동화 같은 기사가 사실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결국 스완 대신 에디슨이 전구의 발명자로 기억되게 되었다.

전기 에너지의 5~10%만 빛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열로 손실되는 단점 때문에 이제 백열전구는 퇴출될 운명에 처해졌다. 그렇게 되기 전에 백 년 이상 인류의 밤을 밝혀준 이 대단한 발명의 실제 주인공을 기억해 주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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