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클래식] '공자 말씀'도 사실 인간적이고 평범하다

  • 황병기 국악인·이화여대 명예교수

    입력 : 2012.04.02 03:08 | 수정 : 2012.04.04 15:28

    국악인 황병기가 읽은 '논어'
    시대 안 맞는 말 빼니 A4 5장 - 위대한 휴머니스트의 명언집, 품속에 넣고 틈날때마다 읽어… 평범하지만 "아 그렇군" 감탄
    세 번째 작품은 '논어', 古典으로 삶이 맛있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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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병기 국악인·이화여대 명예교수
    한학자도 아닌 내가 논어를 즐겨 읽게 된 이유는, 인류 역사상 공자처럼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높이 평가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공자는 사람이 음악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사람은 시에서 감흥을 받고(興於詩) 예에서 인격을 갖추며(立於禮) 음악에서 완성된다(成於樂)."(태백·泰伯 제8장)

    좀 더 구체적이고 사소한 예를 보면, 공자는 누가 노래를 부를 때 유심히 듣고는 잘 부르면 반드시 앙코르를 청한 뒤 그 사람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공자는(子) 사람과 더불어(與人) 노래를 부를 때(歌而) 잘하면(善) 반드시(必) 다시 하도록(反之) 시키고(使) 후에(而後) 화답(和之)했다."(술이·述而 제31장)

    처음에는 음악인으로 논어 중 음악에 대한 공자 말씀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논어 전편에 빠져들게 됐다. 논어에는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말, 읽을 가치가 없는 말, 이해할 수 없는 말, 중복되는 말 등도 다수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진리로 생각되는 보배로운 말이 가득히 담겨 있는 고전 중 고전이다. 그래서 명언만 뽑아서 원문으로 타이핑한 A4 용지 5장 분량의 '논어 명언집'을 항상 품에 넣고 다니며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읽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과 논다고 하지만, 나는 논어와 더불어 놀게 된 것이다.

    논어를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 나오는 공자 말씀이 모두 평범하기 때문이다. 맹자만 해도 너무 유식하고 목에 힘을 주는 느낌이 들지만 공자 말씀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논어는 그 시작부터 극히 평범하고 알기 쉽고 그러면서도 재미있다.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①배우고(學而) 그것을(之) 때로(時) 익히면(習) 또한(亦) 기쁘지(說) 아니한(不)가?(乎) ②벗이 있어(有朋) 멀리에서(自遠方) 오면(來) 또한(亦) 즐겁지(樂) 아니한(不)가?(乎) ③남이(人) 알아주지(知) 않아도(不) 화내지(�}) 않으면(不) 또한(亦) 군자답지(君子) 아니한(不)가?(乎)"(학이·學而 제1장)

    이 세 말씀은 다 끝에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 호(乎)가 붙어 있어서, 공자가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듣는 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말씀마다 역(亦)을 붙여서 "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것도 또한(亦)"이라고 한 점이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말하는 방법부터 그렇게 민주적이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 공자는 배워서 '아는 것'보다 '즐기는 것'을 훨씬 중요시했다. "아는(知之) 것은(者) 좋아하는(好之) 것(者)만 못하고(不如) 좋아하는(好之) 것(者)은 즐기는(樂之) 것(者)만 못하다(不如)."(옹야·雍也 제18장)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배워서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공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는 것을(知之) 안다고(知之) 하고(爲) 모르는 것을(不知) 모른다고(不知) 하는(爲) 것, 이것이(是) 아는 것이다(知也)."(위정·爲政 제17장)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부터 반성할 수 있어야 참다운 배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인데, 이와 관련된 다음 말씀도 극히 평범하면서도 과연 '그렇군!' 하고 감탄하게 된다. "배우기만 하고(學而) 생각하지(思) 않으면(不) 어두워지고(罔), 생각만 하고(思而) 배우지(學) 않으면(不) 위태로워진다(殆)."(위정·爲政 제15장)

    공자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한 철저한 휴머니스트였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事人) 아직 못하는데(未能) 신을 섬기는 것을(事鬼) 어찌 하겠느냐(焉能) 삶도(生) 아직 모르는데(未知) 죽음을(死) 어찌 알겠느냐(焉知)."(선진·先進 제11장)

    이처럼 공자는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과 사후보다는 살아 있는 동안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시대에 뒤떨어지기는커녕 오늘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말씀도 있다.

    "대중이 싫어하는 것도(衆惡之)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며(必察焉), 대중이 좋아하는 것도(衆好之)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必察焉)."

    이른바 포퓰리즘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자를 도(道)에 통달한 위인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들에게, 그는 실망스러운 말씀을 서슴없이 한다. "아침에 도를 들을 수만 있다면(朝聞道)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夕死可矣)."

    그렇다면 그는 참다운 도를 끝까지 몰랐다는 말이 아닌가. 하긴 인간이 도를 어찌 깨우칠 수 있겠는가. 이 실망스러운 말씀 때문에 공자는 과연 인간이고 그래서 더욱 위대하고 존경스럽다.

    ♣ 바로잡습니다
    ▲2일자 A23면 ‘파워클래식-공자 말씀도 사실 인간적이고 평범하다’ 기사 중에서 “벗이 있어(有崩) 멀리에서(自遠方) 오면(來)”의 ‘崩’(무너질 붕)은 ‘朋’(벗 붕)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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