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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과 기만
피터 포브스 지음|이한음 옮김|까치|360쪽|2만원

자연과 인간세계 양쪽을 넘나들며 의태(擬態)와 위장(僞裝)의 역사를 파헤치는 솜씨가 탁월하다. 의태는 동물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주변의 물체나 다른 동물을 흉내 냄으로써 주위를 속이는 현상. 명백히 생물학의 영역이다. 저자는 생물의 다양한 의태 사례와 그것을 연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미술과 문학, 전쟁에서 쓰인 인간 사회의 '위장' 이야기를 끌어낸다.

보일 것이냐 감출 것이냐

1848년 영국의 젊은 자연사학자 헨리 월터 베이츠는 브라질 아마존 우림으로 탐험을 떠났다. 정글 속에서 그는 한 나비가 다른 나비처럼 겉모습을 위장하고 있는 걸 보고 충격에 빠진다. '의태'를 발견한 것. 방어능력이 없는 생물이 경계색이나 주위의 빛깔로 제 몸빛을 바꾸어 방어하는 이런 의태를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베이츠 의태'라고 부른다. 겁을 먹으면 얼굴을 부풀려서 뱀을 닮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주홍박각시나방처럼 거짓 색깔로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전략이다.

보일 것이냐 감출 것이냐를 놓고 생물들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개발해 왔다. 먼저 '눈에 띄지 않기'. 눈에 잘 띄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줄기에 앉는 나방은 줄기와 비슷하게 짙은 색깔을 띠기 쉽고, 나뭇잎을 먹는 애벌레는 나뭇잎과 비슷한 녹색을 띠기 쉽다. 날개의 윗면은 남색과 황갈색으로 화려하지만, 날개를 접고 앉으면 죽은 나뭇잎과 똑같이 보이는 칼리마속 나비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연에선 눈에 띄어야 할 때도 있다. 짝을 찾아야 할 때가 대표적이다. 화려한 꼬리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은 먹힐 위험을 무릅쓰고 짝을 얻기 위해 '과시'하는 쪽을 택했다. 심지어 자신이 '위험하다'고 광고하는 동물들도 있다. 독을 품고 있는 동물들이 으레 그런 전략을 쓴다. 치명적인 독을 품은 뱀, 맛이 없어서 새가 내뱉고 마는 무당벌레…. 이들은 화려하고 선명한 색깔로 자신이 위험하다고 광고한다.

잘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따라 하는 자들도 나오기 마련. 독이 없으면서도 독이 있는 곤충과 똑같은 화려한 무늬와 색깔로 자신을 광고하는 의태도 있다. '나도 얘처럼 위험하니까 건드리지 마'라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동·식물의 생존수단인 의태와 위장은 인간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위장크림을 바른 국군이 비무장지대에서 수색활동하는 모습.

인간도 위장한다

역사적으로 인간도 숨기거나 드러내는 전략을 써왔다. 화가들이 특히 이 분야에 눈을 떴다. 생물이 3차원의 몸을 캔버스 삼아 무늬와 색깔을 입힌 반면 화가는 2차원의 캔버스를 3차원처럼 보이는 색칠 기법을 고안했다.

위장술은 전쟁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위장 전함, 은폐된 포, 나무 감시 초소, 모조 비행장 등 다양한 장치들이 개발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자연과 인간세계의 위장과 기만술이 만나는 자리였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1917년 프랑스군은 전투 부대에 최초로 위장 부대를 창설하면서 자연에서 은폐의 대가로 가장 잘 알려진 카멜레온을 상징으로 삼았다. 흥미로운 것은 입체파가 위장술과 관련 있다는 것. 1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됐을 때 파리의 라스파유 대로를 걷던 피카소는 지나가는 위장 트럭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걸 만든 게 바로 우리야. 저게 입체파라고!" 피카소가 여러 면으로 쪼개 그린 흐릿한 기타와 인물 그림은 이미 위장처럼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1차대전 때 주로 장비를 은폐했다면, 2차대전에선 위장술이 좀 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쓰인다. 공중전이 주된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항공기를 위장하고, 탱크는 '선실드'라는 덮개를 이용해 트럭처럼 위장했다. 노르망디 작전은 대규모 군대가 위장복을 입은 첫 사례. 독일의 울창한 숲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나치 엘리트 무장 친위대용 위장복은 가장 효과가 뛰어났으며, 일반 군대는 사용할 수 없었다.

꽃처럼 위장해 파리를 잡아먹는 말레이시아의 난초사마귀.

연구도 진화한다

의태 연구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생태학과 유전학을 결합한 의태 연구가 진행됐으며, 나비 날개무늬의 유전과 사람 혈액형의 유전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RH 혈액형으로 인한 유아 사망문제를 해결하는 의료 기술의 개발로 이어졌다. 저자는 "위장과 의태는 기호의 거대한 제국에 속한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이라며 "지구에 생물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숨거나 위협하는 척하거나 놀라게 하거나 남이 만든 다소 멋진 무늬를 단순히 모방하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찾아낼 것"이라고 했다.

과학과 예술, 자연과 역사까지 분야를 넘나드는 사례들이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한다. 영국 워릭대학교가 학제간 통섭에 기여한 저작에 주는 영국 워릭 저술상을 받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