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하남시에서 진료를 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다. 개원 초기에 들르던 환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동네를 떠나기도 했고 멀리 이사 갔지만 아직 내 진료실 문을 두들기는 이들도 있다. 동네를 떠나면 그 동네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줄곧 오던 환자가 안 보이면 가끔은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 개원 때부터 우리 병원에 다니던 70대 할머니가 들르셨다. 어디가 아파서 온 게 아니라 먼 곳으로 이사 간다며 인사차 들렀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당뇨와 고혈압에다가 심장 혈관이 막히는 관상동맥 질환이 있어 약물치료를 받아왔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치료도 하라는 말에 "그냥 여기서 치료받다가 죽겠다"며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약을 써도 증상이 더 나빠져 약물만 고집해서는 큰일 치르겠다 싶어 설득과 협박, 꼭 낫는다는 장담까지 더해 겨우 할머니 마음을 돌렸다. 큰 병원으로 옮긴 할머니는 내과 치료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개흉수술로 심장 혈관을 이식해야 했다.
"여기서 죽겠다"던 할머니는 수술 몇 달 뒤 우리 병원으로 와서 "당신 덕분에 살았다"며 고마워했다. 당뇨는 계속 내게서 조절받겠다고 하기에 큰 병원과 우리 병원을 번갈아 다니셨는데, 이번에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이제 서울에 가족도 친척도 없으니 이사 가면 아마도 살아생전 다시는 의사양반을 못 볼 것"이라며 무척 아쉬워했다. 내 두 손을 마치 아들 손처럼 꼭 잡고 몇 번이나 어루만지던 할머니는 진료실을 나서기 전 홍삼 음료 한 상자를 슬며시 내 책상 밑에 밀어 넣었다. 할머니 형편을 뻔히 알지만 그저 사양만 할 일도 아니라서 "할머니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마시겠다"며 받으니 흡족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혈압 진료를 받는 한 50대 남자는 개원 초기에 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찾아왔었다. 내게서 "술을 줄이라"는 타박을 어지간히도 많이 받았다. 그는 "딸이 서울대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한턱 내다가 그렇게 됐다"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몇 달 전 그 환자가 떡을 한 꾸러미 들고 와서는 "서울대 입학했던 딸이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번듯한 사회인이 되었다"며 나눠 먹자고 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한 분은 그날 갓 딴 농산물을 놓고 가기도 하고, 자식 덕분에 생전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던 할아버지도 꿀 한 통을 슬그머니 놓고 가기도 했다. 이런 '촌지'를 받을 때마다 내 아내는 "동네 의사한테도 선물이 들어오느냐"며 매우 신기해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런 환자들은 모두 내가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들이었다. 내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형님처럼 환자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같이 고민했다. 최선의 치료가 될 수 있도록 때로는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처방을 바꿨던 환자들이었다.
의사는 외로운 직업이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올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올바른 진료의 첫걸음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