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권세원(54)씨는 최근 요트 1급 자격증을 땄다. 학과 시험은 혼자 준비하고 서울 상암동의 한강 난지지구 요트장에서 1년간 강습을 받았다. 낚시를 좋아하는 그는 보트 세일링을 즐기는 한편 나중에는 직접 요트를 한 척 장만해 임대사업을 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영흥도와 전곡항, 대부도 등 집 근처에는 마리나가 세 군데나 있어 요트를 정박시켜 두는 데도 별 어려움이 없다.

서울 영등포구‘서울 마리나’에 떠 있는 딩기 요트. 딩기 요트는 엔진과 선실을 갖추지 않은 1~3인용의 소형 세일링 요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레저문화가 국민 소득 3만달러 수준 국가의 외양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부산·통영뿐 아니라 보령·부안·고성·강릉·양양 등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마리나가 25개나 들어섰고,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승마클럽도 전국 293개에 달한다. 미국 유럽에 몇년 전 나타난 '글램핑'(글래머러스+캠핑·호텔 수준의 호화로운 캠핑을 지칭)문화까지 들어왔다. 이런 흐름은 국내 2만~3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레저 얼리 어답터(leisure early adopter)'들이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 등록된 세일링 요트는 240여척, 모터로 움직이는 파워요트는 7300여척에 달한다. 실제 떠다니는 요트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개인 요트를 진수해 직접 국내로 몰고 오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대한요트협회는 최소한 3만명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요트문화를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자격증 소지자는 3800여명. 10년 전 61명에서 급격하게 숫자가 늘었다. 이들이 요트문화의 '얼리 어답터'인 셈이다. 일부 대형 마리나는 주변에 편의시설과 상권까지 형성이 돼 장기 정박하며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마리나산업진흥회 오상훈 과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국민 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요트가 '소수의 스포츠'에서 '대중적 스포츠'로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며 "우리도 마리나와 요트산업에 눈을 돌릴 때"라고 말했다.

승마도 전국 주요 도시 근처에 승마클럽이 빼곡히 들어서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말을 탈 수 있는 여건으로 변화했다. 지난해 문을 연 경기도 남양주의 디원승마클럽은 매주말 40분 단위로 진행되는 단체 승마 프로그램이 거의 공백 없이 진행되고 있다. 말 스무 마리를 갖춘 이 클럽의 경우 1인당 4만원(5인 단체 기준)을 내면 40분간 강습과 함께 말을 탈 수 있다. 익숙해지면 왕복 5㎞의 코스를 달릴 수 있다. 한국마사회는 '전 국민 말타기 운동'의 일환으로 승마 레슨비의 70%를 마사회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6000여명에 이어 올해는 7500여명을 지원할 계획. 말산업 종합 포털인 '호스피아'(www.horsepia.com)에 접속해 신청하면 된다. 마사회 관계자는 "매년 70~80개의 우수 승마클럽을 선정해 지원한다"며 "최근 개인 마주(馬主)들도 등장해 자기 말을 도시 근교 클럽에 맡겨 두고 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약 3만1000마리의 말이 등록돼 있다. 승마협회나 지자체, 동호회 등이 주최하는 승마대회만 매년 30여 차례에 달한다.

'글램핑'으로 불리는 럭셔리 캠핑문화도 등장했다. 아직은 주로 호텔들이 캠핑·요트·승마 등을 연계시킨 고가의 숙박상품을 내놓는 수준. 10년 경력 '캠퍼' 송준씨는 "약 3~4년 전부터 고가 장비를 갖추는 전문적인 캠핑문화가 등장했다"며 "소위 '럭셔리 캠핑' 같은 과시적 목적보다는 제대로 '자연'을 즐기고 싶은 실용적 이유에서 전문 장비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요트·승마·캠핑은 개인과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하대 생활체육과 유흥주 겸임교수는 "지난 10여년 사이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20~30년 만에 '마이 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향후 5~10년 안에 요트·승마·캠핑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며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갖고 어떤 여가를 즐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북유럽 국가들처럼 우리도 다양한 여가 문화의 확산이 사회 갈등을 줄이고 계층 간 대립의 완충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