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3] 독도 영유권, 이미 1946년에 결판났다

  • 허동현 경희대 교수·역사학

    입력 : 2012.03.29 23:15

    독도는 "근세 이래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1905년 시마네(島根)현 고시는 이를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일본 외무성의 공식 입장이다. 이는 일제가 독도를 앗아갈 때 내세운 "주인 없는 땅을 선점(先占)했다"는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애초 일본 내무성은 독도 편입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한국령이란 의문이 드는 황막한 일개 암초를 얻어 환시(環視)하는 여러 외국이 우리가 한국 병탄에 야심이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은 이익이 극히 적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일제는 갑자기 독도 영토편입을 강행했을까? 1905년 1월 뤼순(旅順) 함락 이후, 일제가 독도 앞바다를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결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2월 22일 독도 편입이 일방적으로 공포되었고 5월 28일 독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는 무릎을 꿇었다.

    1954년 10월 부산항에서 열린 원양어업 출어 선단식장.‘ 평화선 사수’라는 구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독도의 험난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세력을 구축(驅逐)한다." 1943년 카이로 선언의 이 같은 정신은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명문화한 1946년 1월 29일자 연합국최고사령부(SCAPIN) 지령 제677호와, 그해 6월 독도 수역(水域)에서 일본의 어로 활동을 금하는 '맥아더라인' 공포로 확인됐다. 일본은 1951년 9월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일본은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포함하는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란 문구에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며 한국 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연합국이 독도를 모도(母島) 울릉도에 부속된 도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1월 독도가 포함된 해양주권선인 '평화선'을 선포했고, 넉 달 뒤 일본 마이니치신문사가 외무성의 자문을 받아 펴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해설서에 실린 '영역도(領域圖)'는 독도를 한국령으로 명기했다. 그해 9월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한반도 주변에 설정한 해상방위수역(클라크라인) 역시 독도를 포함했다. 그때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자신도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점을 인정했던 것이다. 지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자가당착의 우(愚)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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