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를 주제로 전 세계 53개국 정상(급)이 참여한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27일 핵물질의 최소화 등을 골자로 한 '서울 코뮈니케(정상선언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폐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핵테러 방지에 가장 중요한 고농축 우라늄(HEU)과 플루토늄의 감축과 관련한 성과가 이번 회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핵물질 감축 규모 제시 못 해

이 대통령은 이날 참가국들이 내년 말까지 HEU 감축 계획을 제출하기로 했다는 점(코뮈니케 제5항)을 강조하며 "매우 의미 있는 합의"라고 했다. 구체적 목표량이 제시되진 않았지만 각국이 자발적으로 HEU 감축 의지를 밝힌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의료용·연구용으로 널리 쓰이는 HEU를 저농축 우라늄(LEU)으로 대체하자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도 성과로 평가된다. HEU는 자칫 테러 집단의 손에 넘어가면 가공할 무기가 되지만 LEU는 그럴 위험성이 극히 낮다. 이와 관련, 한국·미국·프랑스·벨기에는 이날 연구용 원자로에 쓰이는 HEU 연료 대신 LEU 연료를 사용하는 4개국 공동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1차 세션 직후 각국 정상과 대표들이 모여 손을 흔들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가운데는 이명박 대통령이, 왼쪽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른쪽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자리 잡았다.

이처럼 코뮈니케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뜻이 맞는 몇몇 국가끼리 제시한 공동 사업들 가운데 유의미한 내용이 꽤 있었다는 평가다. 이번 회의 기간에만 △의료용으로 쓰이는 HEU를 LEU로 바꾸는 사업(미국·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이용해 방사성 물질을 추적하는 시스템 구축 사업(한국·베트남 등) 등 5~6개가 발표됐다.

코뮈니케 내용 가운데는 '개정된 핵물질방호협약이 2014년까지 발효되도록 한다'는 조항(제1항)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 협약은 핵물질이 불순한 세력에 의해 탈취되거나 밀매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실효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2005년 채택 후 7년이 지나도록 비준에 필요한 97개국 이상의 동의에 턱없이 모자란 55개국만 비준한 상태다.

"태생적 한계 있다"

일각에서는 핵물질 감축과 관련해 "아무 성과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때 미국·러시아 등이 약속한 핵물질 감축량(핵무기 2만개 분량)과 이중 실제 감축량(핵무기 3000개 분량) 등 '과거의 성과'만 부각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회의를 통해 추가 감축되는 핵물질의 양은 제시되지 못했다.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안보정상회의에는 핵물질 감축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참가국들의 '하우스 기프트(house gift·초청받은 사람이 집주인에게 주는 선물)', 즉 자발적 이행 약속에만 의존해야 하는 점이 한계"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각국의 공약을 검증할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미·중의 미묘한 신경전

한편 이번 회의에선 핵안보에 관한 미·중 정상 간의 미묘한 견해차도 드러났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처음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이 다른 참가국에 '핵물질을 더 감축하라'고 독려하는 입장이라면, 후 주석은 여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신경전은 회의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회의 결과를 발표하던 이날 오후 5시 중국대표단은 코엑스 옆의 한 호텔에서 독자적인 기자회견을 열고 후 주석의 발언과 중국의 정책을 소개했다. 먀오웨이 공업정보화부장(장관급)은 "중국은 핵안보의 중요성에 매우 공감하나 이것이 (개발도상국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며 "핵물질 감축 등은 어디까지나 각국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번 회의 참가국 중 별도의 브리핑 센터를 만들어 자국 의견을 발표한 나라는 중국이 유일했다.

☞ 고농축 우라늄(HEU)

천연 우라늄에 0.7%밖에 없는 U235(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천연 우라늄을 농축한 것.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U235가 20% 이상이면 HEU로 분류한다. U235의 비율이 3~5%면 원전의 연료로 쓰이지만 90% 이상이 되면 핵무기의 원료가 된다. HEU는 연구용·의료용으로도 널리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