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기구를 사랑한 근육

조선일보
  •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입력 2012.03.27 03:08

    [내일의 미술가들] 육체 예술가 정금형
    1인극 '휘트니스가이드' 기계를 他者로 의인화

    2011년 작‘휘트니스가이드’에서 신장측정기를 사용하는 정금형. /임근준 제공
    몸으로 하는 예술은 여전히 전통에 따라 분류된다. 행위 예술을 하면 '퍼포머'라 불리고, 몸짓과 표정으로만 연기하면 '마임이스트'가 되는 식이다. 하지만 딱히 어디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몸의 예술가도 있는 법. 정금형(33)이 그렇다.

    몸으로 하는 예술이 왜 '미술'이냐고? 1980~90년대 설치미술의 대두 이후 눈에 뵈는 모든 형식의 예술을 미술로 받아들인 현대미술계는, 정체가 모호한 작가를 미술가로 포용하는 데 능하다. 2010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일찌감치 회고전을 치른 무용수 출신의 신개념 예술가 티노 세갈이 좋은 예다.

    2011년작 '휘트니스가이드'에서 정금형은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체력 단련장처럼 꾸민 소극장에서 운동복 차림의 정금형이 무표정한 얼굴로 운동기구를 차례차례 사용하기 시작했다. 의학용 뇌(腦) 모형을 올려놓은 벨트 마시지 기계를 마주한 작가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이어 기계가 작동하고, 작가의 근육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다양한 자세로 연출됐다. 이렇게 몸을 푼 작가가, 얼굴 모형을 부착해놓은 일립티컬(허공에서 걷는 것처럼 운동하도록 한 기구)로 이동해 본격적인 체력 단련 시범을 보일 때, 관객은 이 작품의 주제가 '기계와 인간의 섹스'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손잡이를 이리저리 매만져가며 허공에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야릇하게 성교 자세를 연상시켰다. 운동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자, 작가는 소리가 나는 구간만을 꾸준히 반복하기도 했다.

    러닝머신 차례가 되자, 작가는 소음만 가득한 TV 화면이 속내를 알 수 없는 연인의 얼굴이라도 되는 듯 뚫어져라 응시했다.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점차 속도를 높여 '그'를 향해 내달리더니, 일순 발판의 속도를 뛰어넘어 기계를 냅다 품에 안았다. 이렇게 차례로 진행되는 운동법 안내를 통해, 작가는 운동기계의 의인화된 요소와 성애적 함의를 극의 형식으로 시각화해냈다. 꽤 민망한 장면이 계속 연출됐지만 관객은 진지한 자세로 일관했다.

    인간과 사물의 일상적 관계에서 주체와 타자가 만나는 새로운 접면을 탐구해 그럴듯한 1인 공연을 연출해 낸다는 것이 정금형의 탁월한 점. 2005년 '피그말리온'으로 데뷔한 정금형은 2008년작 '금으로 만든 인형'으로 이름을 얻었다. 몸의 일부에 가면을 덧대놓고 애무를 주고받고, 진공청소기에 얼굴을 붙여놓고 성교를 나눴던 이 득의작의 핵심은 '간단한 장치들과 내 몸의 동작을 이용해 타자(他者)를 만들고 그 타자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 2009년 굴착기 운전 자격증을 취득한 작가는, 굴착기와의 성교를 안무해내는 일에 도전한 결과를 추려 '유압진동기'란 괴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육체 예술가의 연구 주제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달리기 선수 같은 체격에 서글서글한 성격의 정금형은, 호서대학교 연극영화학부와 ew.jsp?id=460" name=focus_link>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공부하기도 했다. 평소엔 제 작업이 '상당히 변태적'이라는 점에 쑥스러워하는 모습이지만, 작품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작업 개시와 함께 소위 '정신 줄을 놓고' 몰입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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