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살아남으려면 기술 배워라"… 어머니는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

입력 2012.03.26 03:12

실용과 거대 담론, 두 가치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 김용을 만들어

세계은행 총재 후보자인 김용(53) 다트머스대 총장은 의사가 된 이유를 설명할 때마다 대학 시절 부친과의 대화를 소개한다.

그는 브라운대 2학년 방학 때 미 아이오와주(州) 머스카틴의 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 김낙희(1987년 별세)씨로부터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이 났던 아홉살 때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했던 다짐대로 "철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겠다"고 답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해도 좋지만 우선 (의대)인턴이나 끝마쳐라.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살려면 기술이 꼭 필요하다."

김 총장은 "부친은 매우 실용적인 분이었고, 철학을 전공한 모친은 거대 담론을 즐겨 얘기했다. 상반된 두 가치가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의 회고담은 다섯 살 때인 1964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아온 이민자의 고민을 드러낸다. 부친은 6·25 전쟁 당시 17세 나이로 고향인 북한 남포를 떠나 홀로 월남해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부친은 미국 내륙의 작은 백인 농촌마을 머스카틴에 정착해 아이오와대 치대 교수로 일했다. 지난 2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문으로 유명세를 탄 머스카틴엔 김 총장과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가족 등 아시아계로는 딱 두 가족만 살고 있었다고 한다. 부친은 실용의 중요성을 어린 아들에게 주입했다. 김 총장은 "아버지는 매주 금요일 '숙제는 오늘 마쳐라. 일요일까지 미루면 그땐 못하게 하겠다'면서 일요일엔 공부를 못하게 했다. 제때 공부하게 하려는 아버지만의 기술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친은 뉴욕 유학 시절 한인 파티에서 모친 전옥숙씨를 만나 결혼했다. 전씨는 경기여고 졸업 후 아이오와대에서 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 지인은 전씨에 대해 "전쟁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들을 돌보려고 마산에 머물면서 당시 경기여고의 부산 피난 학교까지 통학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모친으로부터 '너는 누구인가'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는 질문과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김 총장의 외조부는 평북 선천 출신인 시조시인 전병택씨(2010년 별세)로, 애국지사 원호회 등에서 활동했다. 외조모는 이경자 시인이다.

김 총장의 외삼촌은 그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전헌(70)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다. 전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프린스턴 신학교(석사)를 나와 뉴욕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뉴욕주립대를 거쳐 2004년부터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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