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우리가 정말 해낸 건가요?"
신미성(34)·이현정(34)·김지선(25)·이슬비(24)·김은지(22·이상 경기도 체육회). 전광판에는 7대3이란 점수가 새겨진 상태에서 경기 종료가 선언되자 얼음판에 서 있던 다섯 명의 한국 여자 컬링 대표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한국 여자컬링이 네 번째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란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 대표팀은 23일(한국시각) 캐나다 앨버타 주(州) 레스브리지의 엔맥스센터에서 열린 예선 최종일 경기에서 러시아를 7대3으로 물리치며 8승3패로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날 러시아가 초반에 먼저 2점을 뽑자 한국 선수들이 흔들렸다. 그때, 관중석에 있던 한 현지 관중이 "가자, 한국(Let's go Korea)"이라고 외쳤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2만 관중은 다 같이 발을 구르며 한목소리로 한국을 응원했다. 당황한 빛이 역력했던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3엔드부터 침착한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중반에 경기를 뒤집었고, 결국 7대3으로 4점 차 역전승을 일궈냈다.
한국은 12개 팀 풀리그 예선에서 스웨덴·스위스와 8승3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DSC(Draw Shot Challenge·경기 선후공을 가리는 샷의 정확도)에서 뒤져 아쉽게 3위가 됐다. 한국은 25일 공동 4위인 미국―캐나다의 순위결정전 승자와 플레이오프 첫 번째 경기에서 이기면 1·2위 맞대결 패자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컬링 '불모지'에서 나온 기적
한국 여자 컬링의 세계선수권 4강은 기적에 가깝다. 전용경기장조차 없던 시절 스톤을 굴리기 시작한 한국 여자 컬링 1세대인 신미성과 이현정은 "플레이오프 진출은 10년 전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라고 했다. 신미성과 이현정은 성신여대 체육학과 1학년 때인 1998년 동호회를 통해 컬링을 접했다. 당시 팀원들이 각자 5000~1만원씩 모아 광운대 아이스링크를 빌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기본기를 익혔다. 빙판에 설 수 없을 땐 학교 무용실에서 거울을 보고 인형을 던지면서 자세를 익혔다. 전용 신발이 없어 일반 운동화 바닥에 본드로 아크릴을 붙이고 얼음판에 서야 했다.
2001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신미성과 이현정은 방학 때면 매일 산을 오르내렸다. 이들이 속한 성신여대 팀은 같은 해 아시아태평양선수권에서 일본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02년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한 한국은 9전 전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동료들이 컬링을 포기한 가운데 신미성과 이현정은 2003년 창단한 경기도 컬링팀에 연봉 2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입단했다. 돈보다는 반드시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열망이 강했다.
◇젊은 피 수혈로 슬럼프 탈출
한국여자컬링은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은메달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다른 종목 운동선수들이 하나 둘 컬링을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살아났다. 이번 대표팀의 주역으로 성장한 김지선과 김은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다. 하지만 작은 체구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자 고교 때 컬링으로 전향했다.
김지선은 2007년 선진 기술을 익히러 중국 하얼빈대학으로 1년간 '컬링 유학'을 다녀왔다. "우리 전력을 파악하러 온 스파이 아니냐"는 중국 선수들의 냉대를 묵묵히 견뎌냈다. 김은지는 매일 망가진 브러시를 새로 씻어 재활용하면서 훈련에 몰두했다. 여기에 어릴 때부터 컬링을 배운 선수가 가세했다. 이슬비는 군위여중 때 컬링을 시작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 서겠다"
여자 대표팀은 올해 세계선수권에 사활을 걸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서였다. 2014 소치 올림픽 자동출전권(8장)은 2012·2013 세계선수권 성적을 바탕으로 주어진다. 3년 전 결혼한 신미성은 2세 계획도 이번 대회 이후로 미뤘다. 소치올림픽 메달 유망종목에 들지 못한 여자컬링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수 없어 인근 식당과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매일 다섯 시간씩 땀을 흘렸다.
대표팀은 세계선수권 직전엔 3주간 캐나다 현지 교민의 집에서 민박하면서 전지훈련을 했다. 식사비를 아끼려고 점심은 컬링장에서 파는 햄버거로 때웠고, 아침 저녁은 직접 해먹었다.
4강 진출을 확정 짓고 여자 컬링 대표팀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함께 했다. 소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선수들이 정영섭(55) 감독과 최민석(33) 코치에게 약속이나 한 듯 외쳤다.
"선생님들, 그동안 맨날 져서 너무 속상하셨죠.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앞으론 더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