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로 규정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가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주권국가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이 '주권(主權)'을 거론할 수 있을 정도의 정상 국가로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마치 죄를 짓고 형을 사는 범죄자가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격이다.
4월에 예정된 미사일 발사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1695호·1718호 및 1874호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이 결의안들은 북한에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기하도록 요구했다. 아울러 북한이 관련 물질과 장비 및 기술을 반출·입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을 유엔 회원국들의 의무 사항으로 명시했다. 결국 평화적이건 군사적이건 관계없이 모든 탄도미사일 활동이 금지된 것인데, 여기에는 국제 평화를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주권도 제약할 수 있다는 취지가 깔려있다.
지난 2월 29일 북·미 3차 회담의 결과가 발표되자 장밋빛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북한이 영변의 핵 활동을 중단하고 IAEA 사찰을 받는 것은 물론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을 유예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난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선언으로 이런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번 기회에 북한 새 지도부의 속내와 전략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 핵심은 핵과 미사일 포기는 북한의 정권 세습과 상극(相剋)이라는 점이다. 김정일 부자는 세습을 통해 권력을 잡았지만 바로 그 세습 때문에 북한의 미래를 열어나갈 개혁·개방을 할 수 없고 핵과 미사일도 포기할 수 없다. 개혁·개방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개선을 전제로 하는데, 세습 체제에서는 후계자가 선대(先代)의 과오를 인정하는 순간 권력 기반이 무너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모택동에게 두 번이나 추방됐던 피해자인 중국의 등소평은 모택동의 업적이 70%, 과오가 30%라고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개혁·개방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습으로 권력을 잡은 북한의 후계자들은 제 살을 도려내는 식의 개혁·개방을 할 수 없다.
북한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유훈 통치를 하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도 포기할 수 없다.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최대 업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이라고 찬양하는 북한은 핵·미사일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것만이 대내외적으로 정권을 보장받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세습의 멍에를 짊어진 김정은도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군사 강국을 만들어서 대내 안정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는 협상과 도발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생존을 모색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2월 29일 발표된 북·미 합의는 지난 20년 동안 반복된 드라마의 한 편에 불과하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2012년 도발 일정의 시작일 뿐이다. 금년 하반기로 가면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북한은 다양한 대남 도발을 시도할 것이다. 폭력과 비폭력을 동원해서 남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한 정권의 요구에 따르는 정치 세력이 등장하도록 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국제사회를 겨냥해서 북한이 선보일 카드는 3차 핵실험이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된다고 믿는 북한이다. 핵과 미사일이 있어야만 힘을 바탕으로 미국을 설복할 수 있다고 믿는 북한이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올해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카드는 새로운 형태의 핵탄두를 동원한 3차 핵실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