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저녁 9시쯤, 서울 서초동 근처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 이모(36)씨는 멈춘 버스 안에서 30분 동안 갇혀 있었다. 서초동을 출발한 버스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야 했지만 30분간 좌회전 신호는 들어오지 않았다. 곧이어 경찰청 사이드카와 오토바이 등 호송차량 일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강남 일대를 지나갔다.
영문을 몰랐던 이씨는 나중에야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외국정상 호송을 위한 예행연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씨는 "퇴근 시간대 아무런 공지도 없이 이렇게 시민의 발목을 잡아서 되느냐"며 "버스 앞에서 대기 중이던 택배기사들은 시간이 돈인데 얼마나 속이 상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강남 일대는 순간적으로 교통이 마비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경찰과 청와대 경호처는 오후 8시쯤부터 새벽까지 교통신호를 조작해, 강남 주변 주요 퇴근길을 막아서고 있다. 퇴근 시간대 강남 일대를 지나는 수많은 승객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신호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져 차들이 집단으로 클랙슨을 눌러대며 항의를 하기도 한다.
강남 뱅뱅사거리 부근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모(33)씨는 지난 12일 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은평뉴타운에 집이 있는 이씨는 평소 밤 11시쯤 퇴근해 30분이면 집에 도착하는데, 이날은 테헤란로가 막히는 바람에 1시간10분 만에 도착했다. 이씨는 "택시비가 평소보다 8000원이나 더 나왔고, 내 수면시간도 30분이나 줄었다"고 했다. 경찰은 홍보 간판을 설치해 예행연습 시간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간판을 봤다는 시민들은 별로 없다.
입력 2012.03.2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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