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16일 오후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을 전후해서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할 계획임을 밝혔다. 2·29 미북합의가 발표된 지 17일 만이고,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뉴욕 방문을 마치고 떠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김정은 시대의 첫 번째 깜짝쇼였다. 북한의 위성발사 소식을 접한 각국의 반응은 격앙된 것이고 국내에서도 북측의 의도와 배경, 향후 상황전개에 대한 전망 등 다양한 분석과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 가지 사실과 추정을 합해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북한은 지난해 말 김정일 사망 이전에 진행됐던 미국과의 접촉에서 위성발사 계획을 통보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를 함께 진행했다고 한다. 물론 북한의 위성발사는 2009년 6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에 대한 명백한 위반임을 미국 측은 북측에 전달했고 양측 간 합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김정일 사망 후 지난 2월 23일 북경에서 재개된 미북 3차 고위급 회담에서도 북의 위성발사를 용납할 수 없음을 전제로 양측은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합의의 이행 여부일 뿐 합의 자체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북미 합의 직후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3월 7일 뉴욕 시러큐스 대학에서 개최되는 민간학술회의에 참가하였다. 그를 통해 전해진 북한의 새로운 대미관은 조만간 재개될 6자회담에 대한 기대와 맞물려 미국은 물론 관련국 모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리용호는 외교의 대가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국 조야(朝野)의 핵심 인사들을 다수 면담했다. 특히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리용호가 "(북한은) 북미합의를 지킬 것이며 그것을 믿어도 좋다"고 말했다면서 "미국과 새로운 (우호) 관계를 맺길 원한다는 리용호 부상의 말은 마음에서 우러난 의사표명이었다"고까지 했다.

이처럼 상황이 긍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파악하였기에 평양의 수뇌부는 강성국가의 대문을 열어젖히겠다고 공언해온 4월 15일을 전후해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2·29 합의와 리용호의 방미 탐문을 통해 북한은 미국 오바마 정부가 대선기간 중 북한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을 원치 않음을 확인하였고, 남한도 총선 이후 햇볕정책을 계승한 세력이 정국을 주도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의 우려와 경고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이 위성 발사장에 외국 전문가와 기자들의 초청 의사를 밝히고, 2·29 합의 이행을 위한 농축우라늄시설 가동 중단과 IAEA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는 등 제2, 제3의 협상카드를 내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전략은 만만치 않으나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김정은의 새로운 세계관이나 대미관을 반영한 것은 더구나 아니다. 그렇게 비치게 된 것은 그렇기를 원하는 측의 기대치와 착시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선(先) 신뢰 구축, 후(後) 핵문제 해결' 방식은 북한의 전통적인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과 용어만 바뀌었을 뿐 동일한 내용이다. 대미관계 개선의지 역시 20년 전, 30년 전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교시했던 '생존을 위한 핵심고리로서의 북미관계'와 하등의 차이가 없다. 북한의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같이 철저히 이해타산에 기초한 벼랑 끝 전술, 성동격서(聲東擊西)식 기만전술을 지속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협박과 기만책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입장 표명과 일관된 대응이 가장 효과적이다. 다음 주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서도 이 같은 현실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과의 신뢰는 구체적 현실에서 행동을 통해, 경험을 통해 차근차근 구축되는 것일 뿐 기대나 선언으로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 수백만 주민이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수십억달러를 들여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에 대해 신뢰를 논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

2·29 미북합의가 파기되면 북한은 또다시 남한을 볼모로 협박과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4월 총선 직후 조속히 국방개혁법안을 통과시켜 대북억제력을 충분히 확보해 나가야 하고,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기만과 이간전술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관련국들과의 유기적인 정보공유와 협조체제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