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7일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의 한 민가(民家)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들이닥쳤다. 환경부가 작년 9월 중국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풀어놓은 몸무게 약 60㎏의 이 반달곰은 민가에 있던 염소우리를 습격해 한 마리를 그 자리에서 물어뜯어 즉사시켰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사람도 위험할 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과 산자락 마을 주민들에게 최근 '반달곰 주의보'가 떨어졌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발간한 '반달곰 연간보고서(2011년)'에 따르면, 지리산 곰들이 민가로 내려와 기물 파손이나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가축을 해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1급 멸종위기종인 반달곰을 지리산에 되살리기 위해 지난 2002년 반달곰 복원사업이 시작된 지 10년 만에 곰이 사람에게도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 지리산 곰들이 국민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지만 곰은 기본적으로 맹수(猛獸)"라며 "외국에서 가끔 전해져 오는 곰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앞으로 지리산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지리산에는 야생(野生)에서 태어난 새끼 곰들을 비롯해 총 27마리의 반달곰이 살고 있다. 이 중 덩치가 큰 곰은 몸무게가 150㎏이 넘을 정도로 육중해졌고, 갓 태어난 곰을 제외한 나머지 곰들도 모두 60㎏ 이상의 체구로 자란 상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이들 곰은 지리산 민가에 20회가량 출몰했다. 경남 하동군 지리산 마을에서는 반달곰이 민가 마당에 있던 젓갈이 든 장독을 때려 부수거나, 마당에 널어둔 곶감을 털어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가로 내려온 곰들은 지리산 반달곰 관리팀원들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곰의 육식(肉食) 습성도 확인됐다. 반달곰 관리팀이 곰의 배설물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 쥐·새 같은 작은 동물은 물론 1~4㎝ 크기의 멧돼지 뼈와 멧돼지 털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었다. 공단 관계자는 "곰이 살아 있는 멧돼지를 사냥해서 잡아먹었을 가능성은 낮다. 올무 등에 걸린 멧돼지 사체를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곰 전문가인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장은 "반달곰은 원래는 육식동물이지만 서식환경이 변하면서 점차 잡식성으로 변한 동물"이라며 "반달곰은 썩어서 냄새 나는 동물 사체도 잘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반달곰이 지리산 도토리나 산나무 열매 등 식물만 주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리산 반달곰이 야성(野性)을 회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민가에 나타나는 등 사람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최근 지리산 곳곳에 곰의 위험성을 알리는 홍보 현수막을 내걸어 등산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지리산 마을 주민들에게는 곰이 싫어하는 '금속성 소리'를 내는 호루라기를 2~3년 전부터 지급해오고 있다.
반달곰관리팀 관계자는 "그동안 민가에 자주 출몰한 곰들이 올겨울 동면(冬眠)을 끝낸 뒤에도 같은 습성을 계속 보일 경우 곰을 붙잡아 회수하는 등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