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안전성 문제가 갈수록 더 꼬여가고 있다. 사고를 한 달 동안이나 감췄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민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더니 이번엔 비상용 발전기가 고장 난 상태에서 원전을 재가동했을 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고리 원전은 지난달 9일의 단전 사고 후 발전기를 손봐 지난달 22~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성능 시험을 통과했지만 이번에 다시 고장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원자로가 재가동된 지난 5일에서 13일까지 9일 동안 발전기가 고장 난 상태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기간 중 또다시 외부 전력 공급이 끊기고 다른 비상 발전기 한 대에도 무슨 이상이 생겼더라면 진짜 재앙으로 치달았을 위험도 있었다.

문제의 비상 발전기는 고리 1호기가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때 설치됐다. 전문가들은 발전기 재고(在庫) 부품들이 들여온 지 34년 동안 창고에 보관돼 있던 상태여서 부품 교체를 해도 고장 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우리 원전이 이렇게 노후 설비, 노후 부품에 안전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할 뿐이다. 전국 원자로 21기에 부설된 비상 발전기 42대 가운데 설치한 지 20년을 넘은 것은 18대다. 지난달 22~23일 KINS의 성능 시험이 발전기를 실제 돌려보지도 않고 얼렁뚱땅 끝난 건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만일 그랬던 것이라면 원전 반경 30㎞ 이내에 사는 322만명의 생명과 안전을 놓고 감독 당국이 도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리 1호기에선 지난 한 달여 사이 하도급 직원이 매뉴얼을 어기고 작업을 벌여 외부 전력이 끊어졌고, 발전기는 설비 이상으로 비상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았고, 원전 직원들은 공모(共謀)해 사고를 은폐했다. 그런 데다 원자력안전위는 현지 파견 직원 4명이 한 달 동안 원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고, 점검 나온 직원들은 발전기가 돌릴 수 없는 상태인데도 그걸 잡아내지 못했다.

대형 사고는 사전에 크고 작은 전조(前兆)들이 먼저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법이다. 고리 원전에서처럼 인적(人的) 실수, 설비 고장, 사고 은폐, 거짓말, 감시 실패(失敗)가 겹치다가 어느 순간 사람 힘으론 통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 터지게 된다.

국민은 이제 원전 운용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나 감시를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모두 믿지 못하게 됐다. 은폐(隱蔽)하는 조직과 무능(無能)한 조직이 나서 원전의 안전성을 조사한다고 해봐야 국민은 그 결과를 믿지 않을 것이다. 외국 전문가 등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로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모든 원전의 안전성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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