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DB

서울 모 고교 2년 정수진(17·가명)양은 지난해 끔찍한 경험을 했다. 스마트폰용 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욕설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 수차례 익명으로 전송되는 '욕설 문자'에 시달리던 정양은 결국 심각한 스트레스로 학교를 한동안 쉬어야 했다. 알고 보니 문제의 메시지는 정양과 같은 반 친구 세 명이 번갈아 보낸 것이었다.

안티 카페 운영 등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사이버상의 집단 따돌림 현상)'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일명 '스마트 불링'으로 점차 바뀌는 양상이다. 실제로 경찰청이 운영 중인 안전드림(Dream) 지원센터(www. safe182.go.kr) 내 '학교폭력·유해환경 신고' 게시판엔 지난달에만 "스마트폰용 메신저로 또래에게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10여 건 올라왔다.

지난해 11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전국 초·중·고교생 12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한 명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용 메신저를 통해 놀림이나 욕설,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스마트 불링 같은 비대면(非對面) 폭력은 별다른 외적 흔적이 남지 않아 피해 당사자의 신고 없인 주변에서 인지하기 어렵다. 이유미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학교폭력 SOS 지원단장은 "스마트 불링 같은 언어폭력은 등교 거부와 불안, 수면 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동반하므로 고통의 정도로 치면 신체 폭력 못지않다"고 지적했다.

국가 차원의 대응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전국 지방경찰청은 사이버 불링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할구역 내 학교를 중심으로 인터넷 포털에 개설된 카페나 블로그, 학교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욕설·비방성 글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불링 피해 사례까지 챙기기엔 여러모로 한계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청 관계자는 "카카오톡이나 마이피플 같은 스마트폰 메신저상의 따돌림 행위는 특히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행히 관련 법률 제정 움직임은 활발한 편이다. 올 1월 원유철(50)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법률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 대표적. 이전까지 적용되던 학교폭력예방법은 사이버상의 따돌림 행위에 관한 구체적 범위가 명시되지 않아 피해 사례가 적발돼도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개정법률안엔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따돌림 행위도 학교 폭력으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한편, 일부 전문가는 "스마트(사이버) 불링 사건이 터졌을 때 무조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처벌 이전에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며 "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각급 학교 차원에서 스마트폰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