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에서 자란 박준경(가명·33)씨는 2009년 선 봐서 결혼했다. 시아버지는 중견기업 오너, 남편은 그 회사 전무다. “어른들이 소개하면 선이고, 애들이 해주면 소개팅이죠. 선이 더 좋아요. 부모를 보장하니까.”

취재팀은 최근 3년간 결혼한 상류층 신랑·신부·혼주 10명과 중산층 신랑·신부·혼주 10명을 심층 인터뷰 했다.

이 가운데 상류층이 보인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할 생각은 애초에 해본 적 없다’는 심리였다.

결혼비용을 스스로 해결한 사람은 단 두 명. 이혼 후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다 재혼한 사업가 강석기(가명·48)씨와 여의도 증권가에서 14년간 일하다 마흔 다 돼 결혼한 이영호(가명·38)씨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부모에게 의지했고, 그런 자기 행동을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고 당연시했다. 부모 세대는 자수성가했을지 몰라도 어차피 자기 세대는 ‘부모 힘이 없으면 자기 힘으론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박씨의 경우 시집에서 분당 주상복합 아파트(231㎡·70평)를 사줬다. 친정에서 시부모 명품 코트·정장·가방·패물과 현금 2억원을 예단으로 보냈다. 박씨도 시부모에게 샤넬 가방, 루이비통 트렁크 등을 받았다. “제 월급 모아서 그 물건 사라면 못 샀겠죠, 일해서 번 돈인데 아까우니까.”

대기업 직원과 결혼한 양준희(가명·31)씨는 “사실 우리나라 이런 풍습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외국에선 부잣집 자식도 자기 힘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은 상류층일수록 부모에게 기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양씨도 강남에서 임대업 하는 친정아버지가 혼수를 해주고, 역시 임대업 하는 시어머니가 전세 아파트(100㎡·30평)를 얻어줬다. 시어머니가 신랑 이름으로 사둔 아파트도 따로 있다.

“자기가 벌어서 집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 친구는 저축하려고 시댁에 살다 ‘분가할 테니 전세라도 해달라’고 했어요. 시어머니가 ‘좀 더 같이 살자’고 해서 스트레스로 하혈을 했더니 시어머니가 할 수 없이 강남에 4억짜리 전세를 얻어줬어요. 자기 힘으론 못 나왔을 거예요. 강남 말고 다른 데 살 생각은 없었을 테고.”

부모 세대의 심리는 좀 더 복잡해보였다. ‘힘닿는 대로 밀어주고 싶다’는 욕망, ‘이런 사회가 올바른 것 같지는 않다’는 자각, ‘어려운 사람들은 얼마나 더 답답할까’ 하는 연민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작년 9월 딸(28)을 결혼시킨 김명인(가명·55)씨는 사돈집에서 5억짜리 아파트(106㎡·32평)를 해오고, 대신 김씨 쪽에서 1억9000만원을 들여 결혼식·예단을 했다. 양가 모두 의사 집안이다. “먼저 자식 결혼시킨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남자 쪽에서) 집도 해온다는데 혼수·예단 적게 해가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예단 같은 거 왜 하나 싶었는데 결국 나도 하고 있더라고.”

샤넬 가방·밍크 코트·다이아몬드 쌍가락지·페라가모 맞춤양복·루이비통 핸드백…. 사돈집에 보낼 물건을 사러 다니며 김씨는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었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물려받은 것 없이 시작해 30평 살다 열심히 모아 40평대로 가고, 다시 50평대로 넓혔어요. 자기 힘으로 올라가는 재미가 있었죠. 요즘 애들은 그런 게 불가능하잖아요? 부모가 집 못해주는 아이들은 어쩌란 건가 싶죠. 젊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 살기 너무 불행한 나라 같아요.”

"우리땐 차곡차곡 돈 모아, 한계단씩 올라갔는데…"

부모들 "도와주자니 한숨… 보고있자니 초조"
"자기 힘으로 시작하는 것, 요즘 애들은 불가능해요…
젊은사람들 살기 불행한 세상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까지"

한편, 지난해 5월 둘째 아들을 결혼시킨 박정자(가명·58)씨는 '100세 시대' 기사가 나올 때마다 초조해진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61)은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딸 결혼시킬 때 혼수 마련하고 결혼식 비용 대느라 2000만원이 나갔고, 아들 결혼시킬 때 아파트 전세금으로 1억2000만원이 다시 나갔다. 노후 자금으로 10년 넘게 적금 부어 1억원을 모았는데, 그 돈은 온데간데없고 3000만원 대출 빚이 생겼다.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러다 아프면 어떻게 하나' 싶다"고 했다.

결혼 비용 부담으로 중산층 부모의 허리가 휘고 있다. 본지가 결혼 정보 회사 선우에 의뢰해 최근 1년간 결혼한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결혼한 사람은 절반도 안 됐다(44.2%). 나머지는 ①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거나(17%) ②부모가 내고 본인 저축을 보탰다고 했다(38.8%). 다 큰 젊은이 10명 중 6명이 부모 등에 업혀 캥거루처럼 결혼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심층 인터뷰 한 중산층 신랑·신부·혼주 10명은 부모·자식의 심리가 미묘하게 엇갈렸다.

부모는 한입으로 "해가 바뀔수록 결혼 비용이 올라 앞길이 캄캄하다"고 했다. 정년은 단축되고 노년은 길어지는데, '부모의 의무' 목록은 자녀의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에 결혼 비용까지 계속 늘어난다는 비명이었다.

반면 자식들은 "죄송하긴 하지만 눈 딱 감고 기대야겠다""부모에게 기대는 건 집값 오른 세상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 자녀의 숙명"이라고 했다. 지난 1월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국내 중견 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대졸 신입 사원 초임 연봉은 평균 3075만원이었다. 젊은 남녀가 3년 반 동안 숨만 쉬고 돈을 모아야 신혼집 마련 비용을 포함해 평균 결혼 비용(2억808만원)을 감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12월 결혼한 김모(28)씨는 "처음에는 부모님께 죄송했는데, 친구들이 모두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고 하길래 나중에는 '마지막으로 떳떳하게 손 벌릴 기회가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반면 부모 도움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박탈감을 느꼈다. 2010년 저축에 대출을 합쳐 자기 힘으로 결혼한 김정현(가명·34)씨는 "화려하게 새집에서 출발하는 친구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부모들도 이런 세태에 할 말이 많았다. 대출 받아 아들 전세값을 대준 최강미(가명·59)씨는 "우리 세대는 다들 셋방에서 시작했고, 자기 힘으로 하나 하나 마련하고 늘려가는 걸 재미로 알았다"면서 "요즘은 부모가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느냐에 따라 자녀 인생이 달라지는 세상이 됐으니 젊은 애들이 안쓰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모는 자식 결혼을 위해 노후 대비를 포기하며 빚까지 지고, 형편이 안 되는 자식은 부모의 도움을 자연스럽게 바라는 결혼 풍조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빚을 내면서까지 (부모가) 결혼을 시키려면 꾸준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은퇴 시기가 앞당겨져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 "결국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자식들의 비용이 커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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