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 앞에서 '곱창전골'은 세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일본인 사토 유키에(49)가 이끄는 인디밴드 이름이 그 첫 번째고, LP 1만여 장을 보유한 음악바(bar) 이름도 곱창전골이다. 원래 뜻인 음식 이름으로 부르는 게 오히려 낯선 곳이 홍대 앞이다.
이곳에서는 밴드나 음악바에 곱창전골이란 이름을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토 유키에는 "곱창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택했다. 음악바는 2002년 처음 문을 열 때 건물주가 "무슨 가게냐. 호프집은 아니었으면 한다"고 하자 "곱창전골"이라고 둘러댄 게 옥호(屋號)가 됐다. 홍대 앞에 가면 늘 이런 신선함과 특이함, 그리고 인디문화 특유의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 음악바 곱창전골에 요즘 고민이 생겼다.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만 틀어주는 이 집에서 흥에 겨워 노래를 합창하거나 때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아예 이 집을 '춤추며 부킹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오는 손님들이 늘어난 것이다. 곱창전골은 최근 가게 앞에 안내문을 붙였다. "한국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해 운영하겠다는 초심(初心)을 지키고자 하니 춤추려고 오시는 분들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내용이었다.
음악바 곱창전골의 선택은 경영학의 관점으로 볼 때 악수(惡手)일 수도 있다. 매출을 극대화하려면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영업의 콘셉트를 바꿔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홍대 문화'를 지탱하는 힘이다. 한낱 주점에 불과할 수도 있는 곱창전골이 '문화'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월경(越境)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금·토요일 저녁 7시쯤 지하철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 가면 장관(壯觀)이다. 역 구내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처음 보는 사람은 필시 무슨 난리가 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대한민국 청년 모두가 이곳에 모인 형국이다. 그 행렬에 한번 끼면 영원히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젊은이들 얼굴엔 "홍대 앞에 간다"는 흥분이 가볍게 일렁인다.
이 지옥의 지하철 9번 출구를 빠져나와 소극장 '블루 라이트'로 향했다. 최근 인디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의 첫 단독공연이 열린 날이었다. 어려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성인이 되어 포크음악으로 돌아선 그녀의 무대는 훌륭했다. 성량(聲量)이 풍부하고 음압(音壓)이 높은 그녀는 노래 한 곡에서도 다채로운 음색을 들려줬다. 그녀는 올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연주 투어를 떠날 예정이다. 그녀의 음악을 들어본 독일의 음악기획사가 투어를 제안했다. 정부나 기업, 문화재단의 도움 없이 최고은은 세계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최고은의 공연장을 빠져나와 통상 '놀이터'라고 부르는 홍대 정문 앞 작은 공원에 가니 '사일런트 디스코(silent disco)' 행사가 한창이었다. DJ들이 나와 즉석 댄스음악을 만드는데, 무선 헤드폰을 써야만 이 음악이 들리는 댄스파티다. 헤드폰 대여료는 3000원. 밖으로 새 나오는 소음이 없으니 민원도 없고 헤드폰 쓴 사람들만 조용히 즐거운 이 즉석 야외 파티에서 한국과 외국의 젊은이들이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었다. 의외로 헤드폰을 쓰고 발장단을 맞추는 50~60대 중·장년들도 꽤 볼 수 있어 놀라웠다.
많은 사람이 홍대 앞은 젊은이들만 있는 곳으로 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문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문화는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실제 홍대 앞 문화를 일궈낸 사람들은 현재 30~40대가 주축이다. 뉴욕에 그리니치 빌리지가 있어 문화의 허파 노릇을 하는 것처럼, 홍대 앞도 자칫 지루하고 푸석하기 쉬운 서울에서 문화의 환기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홍대 앞 역시 자본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다. 이미 홍대 정문 앞 삼거리는 온갖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식당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만큼 임대료도 치솟아, 예술가들은 인근 합정동·상수동·연희동·연남동으로 밀려나고 있다. 서교동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동네들을 '범(汎)홍대 앞'이라고 부른다. 독특한 상호의 가게와 바, 식당들이 하나둘씩 익숙한 상호의 화려한 점포로 바뀌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홍대 앞 문화예술회의' 같은 모임이 발족해 문화를 지키려고 애쓰지만 아무래도 힘에 부쳐 보인다.
1980년대엔 신촌 연세대 앞이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다. 지금 연세대 앞은 아무 특징도, 문화도 없는 '잡탕 동네'가 돼버렸다. 1990년대 중반까지 홍대 앞은 '미술학원이 많은 곳'에 불과했다. 이후 독립 예술가들이 모여 문화의 수목원(樹木園)으로 변모시켰다. 이 문화 생태계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파괴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