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위해서라면…" 사투리와 한판 승부

입력 2012.03.12 03:17 | 수정 2012.11.29 15:43

교정 학원에 취업준비생 몰려
"사투리는 교정 대상 아닌데… 극심한 생존경쟁의 단면"

19.8㎡(약 6평) 남짓한 강의실에서 5명의 수강생이 상체를 앞쪽으로 축 늘어뜨린 채 입을 모아 '압' 하는 기합소리를 냈다. 이들은 양손으로 뺨을 문지르기도 하고, 체조를 하듯 한쪽 다리를 든 채 교재를 읽기도 했다. 한쪽 벽에 붙은 거울이 이들의 동작을 비췄고, 한쪽에는 수업과정을 녹화하기 위한 캠코더가 세워져 있었다.

지난 3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스피치 학원. 이 학원 강사는 "입에 밴 억양(사투리)을 고치려면 막힘 없는 발성이 중요한데, 이렇게 배에 힘이 들어가는 자세를 취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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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스피치 학원에서 수강생들이 오른쪽 발을 든 채 교재를 읽고 있다. 이 학원에서는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발성에 좋은 자세로 표준어 연습을 하는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된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usn.com

"내는 멋찐 목쏘리를 갖고 싶다…." 같은 시각 옆 강의실 모니터에는 8주 전에 촬영한 이지은(19·부산외대 중국어학부)양의 '스피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수업을 듣기 전 지은양은 높낮이 변화가 심한 경상도 억양으로 '나는'을 '내는'으로, '목소리'를 '목쏘리'로 발음했다. 지난 두 달간 훈련을 받은 지은양은 "스튜어디스 면접을 볼 때 표준어를 쓰는 게 더 전문적으로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한 스피치 학원 관계자는 "우리 학원 수강생 25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이라고 말했다. 학원가에 따르면 경상도·전라도 출신 수강생이 가장 많고, 충청권이나 조선족 출신도 강좌를 찾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작년 초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모(27·여)씨는 그해 4월 유통기업체에 응시했다가 면접관에게 "영업직 일을 하려면 사투리부터 고치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씨는 "내게는 상당한 충격이라, 당장 40만원을 들여 강남권 학원에서 '사투리 강좌'를 수강했다"고 말했다. 표준어 억양으로 '밥 먹었어?'를 발음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는 김씨는 "두 달간의 사투 끝에 사투리를 고쳐 작년 하반기 대기업 계열 유통회사 입사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는 "교정(矯正)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인데, 고유한 체계나 독자성을 가지는 사투리는 교정의 대상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우리처럼 사투리 교정 학원이 뜨는 것은 취업난 등과 맞물린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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