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미국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세도나 스토리(The Call of Sedona)'… '단월드' 설립자 이승헌씨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2.03.12 03:20 | 수정 2012.03.12 07:33

    "세도나에선 바위도 瞑想하는구나… 난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뿐"

    ‘단군상 세우기’로 종교집단 몰려 ‘제자’였던 시인 김지하의 기자회견
    CNN과 국내 방송의 집중공격
    20만평 명상센터 ‘마고가든’ 설립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행복 느낄 수 있는 마음 만들어야”

    이승헌씨는“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 체험하지 못한 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 최보식 선임기자
    나는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Sedona)에 왔다. 피닉스 공항에서 내려 차로 2시간 이상 달린 뒤였다.

    이 사막의 도시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단월드(단학선원)' 설립자 이승헌(62)씨가 여기서 겪은 영적 체험을 쓴 책 '세도나 스토리(The Call of Sedona)'가 미국 서점가에서 히트를 친 것이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주간(週間) 집계 베스트셀러 2위에 네 번이나 올랐다. 또 워싱턴포스트와 USA투데이 등에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갔다.

    "세도나에는 매년 4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붉은 바위'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를 소개한 책은 그전에 여러 권 나왔다. 내 책이 주목받은 것은 다른 차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세도나에서는 바위도 명상을 하는구나'로 시작했다. 여길 찾아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 안다. 하지만 세도나의 하늘과 바위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내 책은 세도나와 마음으로 교류하고, 그 속에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명상과 호흡, 초월(超越)을 가르치는 인물이라면 허연 수염을 기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그 나이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외모였다.

    미국에서 몇 권이나 팔렸나?

    "처음엔 서점 진열도 안 됐다. 뒤늦게 입소문으로 퍼져 지금껏 6~7만부 팔렸다. 미국의 한 메이저출판사에서 판권을 사 다시 출판하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

    ―미국인들이 이런 책에 끌리는 걸 보면서 '저 인간들도 정신적으로 공허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야말로 물질문명의 한계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 책이 어필한 것은 동양적인 어떤 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세도나에 들어오게 됐나?

    "긴 스토리다. 16년 전 자동차로 미국 여행을 하고 있었다. LA에서 교포신문에 실린 '붉은 바위'의 세도나 사진을 봤다.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 거대한 암석들 속에서 뻗쳐나오는 기운을 느꼈다. 그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직감했다. 세도나는 지구상에서 기(氣)가 가장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세도나에서 무엇을 했나?

    "처음엔 미국인을 상대로 '명상여행'을 시작했다. 세도나의 붉은 바위에 앉아 명상과 호흡, 기 수련을 지도한 것이다. 미국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동양에서 온 멘토'라는 소문이 입으로 퍼져 나갔다. 한 명이 떠나면 열명을 다시 데려왔다. 영화배우 스티븐 시갈도 왔다. '신과 나눈 이야기'의 작가 닐 도날드 윌시, 당시 유엔 사무차장의 부인과도 사귀게 됐다. 이들은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줬다. 그 뒤로 국내 단월드 센터에서도 명상여행단을 모집했다."

    도시 외곽에는 그가 세운 20만평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명상센터인 '마고가든'이 있다. 혈혈단신으로 와서 사막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건물과 호수, 한국식 정원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평가받을 만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명상 수련을 위해 여기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1950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외톨이로 지내며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야간대학에 들어가 임상병리를 전공했다.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생수대리점을 했다. 그러던 중 고서점에서 '태극권' 책을 접하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그 뒤 전주 모악산에 들어가 21일간 먹지도 자지도 눕지도 않고 죽음의 경계까지 가는 극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란 물음에 '나는 천지기운이다'라는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이것이 단학선원의 배경이다.

    ―당신이 시작하기 전에도 단전호흡이나 기수련을 하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등장으로 전국에 기수련의 바람이 불었다. 무슨 비결이 있었나?

    "처음에는 공원에서 무료로 지도했다. 나도 처자식이 있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985년 단학선원 12곳을 열었지만, 이 중 10곳은 적자였다. 그때 유명인사들을 소개받아 개인 지도를 맡았다. 정주영 회장도 석 달쯤 단학 수련을 했다. 특히 선경그룹의 최종현 회장과는 인연이 깊었다. 최 회장은 선경의 임직원을 지도해달라며 매달 강의료로 1000만원씩 줬다. 당시 적자였을 때 큰 도움이 됐다."

    ―최종현 회장이 물구나무서는 수련 장면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 회장이 암으로 별세하자, "단학수련 열심히 해봐야 별로 도움이 안 되는구나" 하는 말이 돌았다.

    "그분의 형(최종건)이 간암으로 먼저 돌아가셨다. 이 때문에 본인도 그런 걱정을 했다. 최 회장은 수련을 3년쯤 했다. 그 뒤 7년쯤 지나서 돌아가셨다. 단학 수련을 한다고 불로장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마음을 비우는' 수련을 통해 행복해지는 이치인가?

    "마음만 비우는 것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야 된다. 그런 마음을 만드는 곳이 뇌(腦)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뇌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화학적 반응이고 전기작용이다. 이런 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이 명상 수련이다."

    ―당신의 책을 보면, 머리를 자연스럽게 1분만 흔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는데 그런 것인가?

    "몸을 흔들어도 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몸속의 기(氣)를 움직이고 호흡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수련 방법이다."

    ―미국인이라면 낯선 동양인의 행위에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는가?

    "지금도 '유사종교'로 보는 시선은 있다. 하지만 직접 수련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2010년 초 미국 CNN 방송에서 '단요가(단월드의 미국식 명칭)는 맹신적 종교집단'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신의 미국인 직원들이 사기, 성폭행, 노동법 위반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서류를 내보이며) 이는 미국 법원에서 다 기각됐다. 매스컴은 한쪽 주장만 편들어 확인 안 된 것을 보도해버린다. 미국에서 보도됐다고, 국내 방송에서도 고발 프로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국내 센터들이 다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당신은 이미 1990년대 후반 전국의 학교에 '단군상(像) 세우기 운동'을 벌이면서 기독교 일각으로부터 "단학선원은 사이비종교 집단"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당시 나라의 정체성, 전통문화를 위해 단군상을 세웠던 것이다. 그것은 내 신념이었지, 종교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지금도 나는 단군의 '홍익(弘益)' 정신을 받들고 있다. 수련하는 제자들에게도 '널리 이웃을 이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목사님들이 밤에 가서 단군상의 목을 잘라버렸다. 이게 뉴스가 돼 시끄러웠다."

    ―그즈음 시인 김지하도 단월드비리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했다.

    "김지하 시인은 내게 삼배(三拜)를 하며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 정신적 망상 증세까지 보였던 그를 기(氣) 치료로 많이 호전시켰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서 의견 대립이 있었다. 그런 기자회견을 한 것은 뉴스가 됐지만, 나중에 그가 우리에게 사과를 한 사실은 바깥에 알려지진 않았다."

    ―단학선원에서 비리, 횡령, 성추문 등 안 좋은 소문이 잇따른 것은 사실이다.

    "센터가 늘어나면서 지도자들 관리 감독에 문제가 있었다. 돈 문제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예 '스승의 기운은 끝났고 내가 기를 받았다'며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는 이도 나타났다. 여기에다 사단법인을 설립하려고 했지만, 어느 정부부처에 신고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교육'으로 생각하는데, 교육부에서는 '체육'이라며 허가를 안 해줬다. 체육부에서는 '이건 체육이 아니라 정신이니 문화부 소관'이라고 했고, 문화부에서는 '홍익교육을 내세우니 교육부로 가라'고 뺑뺑 돌렸다. 나중에 '서비스업'으로 분류됐다. 그런 과정에서 행정법규 위반으로 내가 석 달쯤 옥살이를 했다. 단학 수련이 결코 문제 된 것은 아니었다."

    ―단학 수련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나의 단학 수련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걸 추구할 뿐이다. 행복의 감정은 찾아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수련으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계속 수련을 하나?

    "특별할 게 없다. 아침에 눈 뜨면 숨을 세 번 길게 들이마시고 세 번 내쉰다. 열 번 반복하면 몸이 안정이 된다. 그동안 수련 프로그램 300개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방법을 너무 많이 만들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 것 같다. 물론 회비를 받는 데는 도움이 됐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1분이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지금 당신의 수련 단계는 어디까지 와있나?

    "단계를 말하면 아는가?"

    ―말해도 내가 이해를 못 할 것으로 보나?

    "지구가 태양 둘레를 얼마나 빨리 도는지 아는가. 총알이 1초에 날아가는 거리가 1㎞다. 지구는 1초에 30㎞ 움직인다. 지구가 이렇게 빠른 걸 누가 상상하겠는가. 이게 바로 의식의 차원이다. 그 의식에 가지 못하면 못 느끼는 것이다. 수련하면 몸이 뜨고 독수리가 눈앞에서 난다.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 체험하지 못한 의식의 차원이 있다."

    ―그건 헛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식은 사람을 절망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평온을 얻게 하는 힘이 된다."

    ―내 듣기로는 '오래 수련하면 몸이 뜬다'는데, 정말 그런가?

    "뜨려면 헬리콥터를 타야지, 다 쓸데없는 얘기다. 어떤 단계에 올라가고 안 올라가는 게 무엇이 중요한가. 실질적인 행복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명상도 깨달음도 스스로 행복을 얻는 데 있고, 남에게 행복을 주는 데 있다."

    ―아직도 영어를 못 하는데, 당초 무슨 마음으로 미국에 왔나?

    "세계 무대에 서려면 미국부터 개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도착 당일 케네디 공항에서 들고간 5000달러를 몽땅 털렸다."

    ―깨달았다는 분께서?

    "한동안 창피해서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깨달으면 다 보일 줄 알았는데 이런 일부터 겪었으니. 그 뒤로 누가 '무얼 깨달았느냐?'고 물으면 '깨달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런 마당에 미국 사회에 어떻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나?

    "처음 일주일 동안 치매 걸린 한 노인에게 기치료를 해주며 숙식을 해결했다. 국내에서는 '대선사'라는 명함을 박고 다녔는데 말이다. 제자들 앞에서 고별강연까지 하고 온 뒤라 되돌아가는 것은 창피했다. 이왕 온 김에 미국이 얼마나 큰지 돌아보고나 가야겠다며 여행에 나섰다. 아마 뉴욕에만 있었다면 세도나를 만날 수 없었고, 지금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세도나에서 명상 바람을 일으키면서 단월드의 미국 센터는 160개, 일본은 300개, 국내는 360개로 늘어났다. 전 세계적으로는 1000개쯤 된다.

    ―전 세계에 맥도날드 숫자만큼 단월드 센터를 만드는 게 당신의 꿈이라고 했다는데.

    "그게 부러웠는데 이제는 아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조직은 커졌다. 당초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단학을 한 것인데, 돈과 명예, 이미지 관리에 내가 쓸데없이 매이게 됐다."

    헤어질 때쯤 그에게 막 호감을 느꼈는데, 그는 내게 "친해지기 어려운 상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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