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떤 문명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마치 사랑처럼 어느 문명에나 보편적인 것이다.”

"좌파들은 경제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슈에서 틀린 주장을 해 왔다."

"중국은 19세기 대영제국이나 20세기 일본제국과 달리 '상업제국'이 될 것이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금융사'에서 '제국론', 다시 '문명론'으로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이 47세의 역사학자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글로벌 지식인 중 한 명이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를 따로 만나 자본주의의 미래와 중국 경제의 향배, 서구 경제 모델의 문제점 등을 물었다.

-지난달 포린폴리시에 발표한 논문으로 시작해 보자. 제목이 '우리는 지금 모두 국가자본주의자들(We Are All State Capitalists Now)'이다.

"제목은 내가 붙인 게 아니다. 내 주장은 흔히 시장자본주의 모델의 대안으로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맞세우는 관점이 틀렸다는 것이다. 공산권 붕괴 이후 북한·쿠바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제도로 수렴하고 있다. 정작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곳은 유럽과 미국이다. 흔히 중국을 국가자본주의의 원형으로 보지만, 1970년대 이후 꾸준히 국가의 역할이 줄고 시장 비중이 커져 왔다. 그게 중국의 성장 비결이다."

-현실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 모델(신자유주의 경제 모델)과 베이징 컨센서스 모델(중국식 사회주의 모델)의 구분이 맞지 않다는 말인가?

"모델로서 둘 다 한계가 있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자유무역이나 재정·통화 정책 등을 말할 때 너무 협소하게 접근했다. 그로 인한 한계가 금융위기로 드러났다. 다른 한편 베이징 모델이라 불리는 중국에서도 시장 역할이 커지고 있다. 정작 두 모델이 간과하는 점은 성장 요건으로서 '제도의 질(quality of institution)'에 대한 강조다. 법의 지배, 투명성, 부패 정도 같은 것 말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상당수 서구 국가도 순위가 낮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차라리 '홍콩 컨센서스'를 말하겠다. 홍콩은 최근까지 법의 지배, 기업활동 환경 등에서 미국보다 앞선다."

‘베이징 컨센서스 모델’은‘워싱턴 컨센서스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퍼거슨 교수는 이 논쟁이 실은 각국의 경제 현실을 간과한 것이라며“정작 중요한 것은 법의 지배와 같은‘제도의 질’”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성장이 앞으로도 10~20년간 지속될 거라고 했는데.

"중국의 발전 수준은 1970년대 한국 정도 된다. 한국을 모델로 하더라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향후 금융 시스템이 더 복잡해지면서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내수 시장의 성장 여지가 크고 중산층도 커가는 중에 있다. 적어도 20년은 성장이 계속될 것이다. 그다음 인구학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할 것이다. 국민 연령층 구조나 노동력 수급 측면에서 임계점에 이른다는 말이다."

-중국이 과거와 같은 제국으로 군림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럼에도 중국이 20세기 초반 일본처럼 군사 제국이 되려는 의지나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중국의 팽창은 현재로서는 주로 무역 부문에 해당된다. 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을 성장 엔진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은 상업제국이 될 것이다. 과거 식민지를 개척한 대영제국과는 아주 다르다. 경제력 확대를 앞세우고 군사력은 부차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미 제국' 모델에 가깝다. 그렇다고 1950~60년대 미국처럼 해외에 군사 개입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제국의 선례는 15세기 정화(鄭和·1371~1434) 함대를 인도양까지 내보냈던 명나라를 들 수 있다. 당시 해외 진출도 상업적 성격이 강했다."

-서방은 자기 문명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는데.

"'서방(the West)'이라고 하지만 북미와 유럽은 다르다. 둘 사이 문화와 경제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자기 개조가 가능하다고 본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 국민은 본능적으로 경쟁과 투명성, 법의 지배 같은 원칙을 선호한다. 하지만 유럽 시민은 그렇지 않다. 처칠이 말했듯이 미국은 다른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본 뒤에야 최선의 방안을 택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엔 미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당신은 제국이 갑자기 몰락한다고 했는데.

"국가로서의 미국과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구분해야 한다. 국가로서의 미국은 내일 당장 무너질 리 없겠지만, 글로벌 파워로서의 미국은 아주 취약하다.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릴 수 있다. 아시아에서든 중동에서든 아주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역시 한때의 문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시장이란 기제는 인류 문명의 초기 단계,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농경 사회에서 도시문명 사회로 넘어가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발견된다. 시장을 대체하려는 어떤 노력도 실패했다. 시장경제라는 뜻에서의 자본주의는 어떤 문명이 21세기를 지배하든지 살아남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어떤 특정 문명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구에서 더 빨리 발달했지만, 결국 모든 문명과 문화에서 수용되고 발전했다. 자본주의는 사랑처럼 어느 문명에나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지식인 중에도 보수주의자로 이름 높다.

“미국 기준에서는 보수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미국 보수층처럼)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아담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위대한 자유주의 전통 사상가들의 원칙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내가 젊은 시절 대처를 지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처는 당시 영국 사회를 지배했던 사회주의 노동당보다 계몽주의 원칙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수주의자가 된 것은 주로 좌파들이 그렇게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는 좌파들이 너무나 많은 것에 대해 너무나 심하게 틀린 것을 줄곧 봐왔다. 그들은 냉전에 대해서도, 핵무기에 대해서도, 경제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틀렸다. 미국에 와서도 공화당 쪽에 가까웠던 것은 민주당이 대표하는 원칙, 즉 유럽식으로 연방정부 기능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