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새내기 직장인 上京記

조선일보
  • 한경선 수필가
    입력 2012.03.06 23:12 | 수정 2012.03.07 08:18

    빚 안고 지방대 졸업 딸아이… '여기는 일자리가 적다'며 새벽에 서울로 올라가 면접
    싼 방 얻으려 추운 날 헤매다 출근 며칠만에 독감 걸려 1박 2일을 정성껏 간호
    '엄마, 가지 마' 눈물 글썽여… 세상이란 바다에 막 출항한것

    한경선 수필가
    때가 때이니만큼 무슨 자랑 같아서 가까운 이들에게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서 어깨에 힘이 빠진 젊은이들을 모두 걱정하고 있는 터라 더욱 그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딸아이는 취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속으로는 아이의 불안을 나도 같이 느끼곤 했다. 대학생이 셋이나 되는 집안의 첫째로, 지방 사립대를 학자금 대출을 받아 다녔으니 그야말로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휴학을 하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고도 하고 취직시험 준비를 한다고도 했지만, 아이는 마지막 종강(終講)이 가까워질 때부터 취업정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너 군데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 집 가까운 곳부터 알아봤지만 지방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 아무래도 서울로 가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맨 처음 면접을 보러 간 곳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직장이었다. 꼭 남자 직원이 필요하다고 못을 박은 곳이지만 지도교수님이 면접이라도 한번 하게 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해서 가게 되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열한 시에 있는 면접시험을 보고 왔다. 거기 다녀와서 면접에 대한 두려움은 좀 극복한 듯 보였으나 결과는 무소식이었다.

    그 후 얼마 동안은 원서 낸 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초조해 했다. 서둘러서 취업한 다음 오래 견디지 못하거나 후회하느니 좀 늦어도 잘 골라서 가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도 채용이 안 되면 실망할까 봐 기대한다는 내색도 못하고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며칠 뒤 인터넷으로 합격을 확인하고 더는 아이가 취업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그런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야 하니 거처할 곳이 필요했다. 아이가 다닐 직장 근처는 월셋값이 만만치 않았다. 나보다 아이가 더 놀라서 질려 있었다. 제 월급으로는 월세 내고 생활하다 보면 적금 하나 제대로 못 넣게 생긴 것을 머릿속으로 계산한 것이다. 나는 월세를 좀 내더라도 자리잡을 동안은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서 살라고 했지만 고개를 내젓는 아이 모습이 짠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결국 그날은 방을 못 구하고 둘이 밤차를 타고 내려왔다. 아이는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아는 선배 방을 같이 써 보겠다고 했다. 월세와 생활비가 덜 들어서 좋고, 살림살이를 새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며 출근하기 며칠 전에 가방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며칠 출퇴근을 해 보더니 거리가 너무 멀어서 방을 다시 알아봐야겠다는 연락이었다. 주말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 며칠을 헤매고 다닌 끝에 역세권 변두리에 방을 얻었다고 전화가 왔다. 조금이라도 싼 방을 얻으려고 추운 날 골목골목을 돌아다닌 것이었다.

    아쉬운 대로 한시름 놓았나 했더니 출근한 지 열흘이 채 못 되어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가슴이 덜컥했다. 몸이 많이 아픈데도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참다가 퇴근 후 병원에 갔더니 독감에 걸렸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잠을 설치며 걱정했다. 다음 날은 마침 내 직장에 큰 행사가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누워 있는 아이 방에 직장 선배가 죽을 사 들고 갔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혹시 독감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못 오게 말렸지만 그 선배는 "나도 처음에 그렇게 아팠어. 아마 마음에 병이 났을 거야"라며 좁은 방에 와서 죽을 먹이고 갔다는 것이었다. 다른 직장 동료들도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며 걱정해 주었다고 했다. 그 말에 조금 마음이 놓였고 다행히 고열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날 아이에게 갔다. 몇 걸음 걸을 곳이 없는 방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1박2일 동안 그저 "먹어라, 먹어라" 하다가 왔다. 아이는 "먹는 게 문제가 아니고 업무 파악하는 게 제겐 더 큰 문제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서울 공기가 오염돼서 그렇다고 투덜거렸지만 분명 서울에 뿌리내리기 위한 몸살이었다. 다시 혼자 떼어 놓고 오는데 아이는 "엄마, 가지 마"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를 안아주고 돌아서다 왈칵 눈물이 났다.

    겨우 몸을 추스른 아이는 휴가를 얻어 학교 총장상을 받으면서 환하게 졸업을 했다. 이제 아이는 세상이라는 바다에 막 출항했고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내가 아이 곁에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아이 대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낯선 서울에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기를, 그리고 저도 그 따뜻함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기를 바란다. 요즘 내 마음 한쪽은 서울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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