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한현우의 커튼 콜] 헌책 50만권 들고 화성으로 간 사나이

조선일보
  • 한현우
    입력 2012.03.03 03:02 | 수정 2012.03.04 10:46

    허름했던 '고구마'의 변신
    28년 외길, 독립운동하는 심정
    헌책, 헐었지만 결코 낡지 않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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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 파묻혀 사는 남자‘고구마’이범순 사장이 낡은 책들로 가득한 서가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다. 1984년 처음 서점을 연 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50만권의 거대한 책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 가를 찾고 있다. 그는“헌책을 다루면서 어제까지 몰랐던 것을 오늘 알게 되는 즐거움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 부근의 후줄근한 헌책방이 아니었다. 한국 최대의 헌책방 '고구마'는 경기 화성시 팔탄면으로 자리를 옮긴 뒤 적어도 외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페인트 손글씨로 썼던 '고구마' 간판은 깔끔한 빨간색 'GOGUMA'가 됐다. 대지 992㎡(약 300평)에 건평 793㎡(약 240평) 규모 2층짜리 세련된 건물로 재개관한 고구마는 논밭투성이인 현재 위치에서 단연 돋보였다. 28년째 이 독특한 이름의 중고 서점을 운영 중인 이범순(57) 사장은 "고구마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헌책 속에 파묻혀 서가를 정리 중이던 그를 '고구마 신사옥'에서 만났다.

    ―언제 서점을 이리로 옮겼습니까.

    "작년 7월에 완전히 이사해 개관했죠. 건물 짓는 데만 1년 걸렸어요. 논이었던 땅에 5m쯤 터를 쌓고…. 여기가 온천지대여서 마음대로 지하를 팔 수 없어요. 그래서 지상으로만 2층을 지었죠."

    ―그 많은 책을 옮기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겠는데요.

    "금호동에서 책을 싣고 여기에 옮겨다 놓는 비용만 5000만원이 들었어요. 지금 책이 한 50만권쯤 됩니다. 이걸 다 정리하려니까 아직도 못 끝냈어요. 그나마 서울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이 10명쯤 됐는데 화성으로 간다니까 아무도 안 따라오더군요."

    ―이 건물 안에 50만권이 다 들어왔습니까.

    "어림도 없죠. 이 건물 건너편에 496㎡(약 150평)짜리 창고가 있어요. 거기에도 가득합니다."

    비록 잡지 과월호와 만화책, 각급 학교 졸업앨범까지 포함하는 책들이긴 하지만, 장서 수가 50만권이면 웬만한 지방 사립대 도서관보다도 많은 숫자다. 이 사장은 스물아홉 살이던 1984년 헌책 1만여권으로 금호동 달동네에 '중앙서적'이란 헌책방을 열었다. 그의 헌책 수집 욕심은 문화의 디지털화가 가속화할수록 그 반대 방향으로 커져 왔다. 그는 1997년 한국 최초의 인터넷 헌책방 '고구마'를 시작해 국내 중고 서적 인터넷 거래의 모델을 만들었다. 회원 6만여명을 보유한 지금 그는 '복합문화공간 고구마'에 중고 서적과 중고 음반 자료실, 음악감상실, 세미나실을 마련해 놓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은 무엇이며 화성으로 온 이유는 뭡니까.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한 헌책방'을 궁리한 끝에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28년간 헌책방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게 많아요.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밤 12시 전에 자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헌책 한 가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게 됐어요. 동생이 화성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자주 왔었는데, 여기가 진짜 문화 불모지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이곳을 택했죠."

    ―접근성이랄까, 지리적 위치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고구마가 들어선 화성군 팔탄면은 서해안고속도로 발안IC에서 가깝고 궁평항에서 멀지 않은 농어촌이다).

    "황무지에서 시작하는 셈이죠. 누구는 헤이리 같은 데로 가야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하던데,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제가 헤이리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 '적당히 성공한 사람들의 놀이터'처럼 돼가지고…. 여기는 서울·경기는 물론이고 충남권까지 흡수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새로 지은 고구마는 1층과 2층에 초대형 중고 서가가 있고 2층에 LP 5만여장이 있는 LP 자료실과 음악감상실, 세미나실이 있다. 1층 입구에 있는 북 카페엔 호기심을 자극하는 옛날 책들과 LP들이 진열돼 있었다. 언뜻 훑어보니 만화영화 '전자인간 337'과 '마루치 아라치' OST 음반과 서울 상문고 교지 창간호(1977년), 천경자 수필집 '한(恨)' 초판, 시인 김창완과 정호승이 주도해 만들었던 시 동인지 '반시(反詩)' 작품집, 1978년 중3 사회 완전정복, 1982년 표준전과, 선데이서울과 월간팝송 같은 잡지가 뒤섞여 있었다. 진열된 선데이서울 표지엔 '간통죄 합헌판결 현장녹음'이란 기사 제목이 인쇄돼 있었다. 1·2층 서가엔 '초판본', '절판본', '창간호' 섹션이 따로 분류돼 있었다.

    ―최근 중고LP도 판매한다고 공지했던데요.

    "헌책방 시작할 때부터 28년간 모아온 것입니다. 그간 공개를 하지 않았어요. 돈이 있다면 어디 수도권 조용한 곳에 LP 박물관을 만들어도 충분한 양이죠. 그런데 그런 비용과 능력도 없고, 관리비용은 너무 많이 들고 해서 이제 내놓기 시작했죠."

    ―음악감상실은 아직 정리가 안 됐고 오디오도 너무 낙후됐던데요(현재 음악감상실 한쪽엔 책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구비해놓은 오디오는 하이엔드급이 아닌 낡은 제품이었다).

    "날씨 좀 풀리면 감상실을 정리해서 가동하려고 합니다. 오디오도 좀 나은 것으로 교체해야겠죠. 30명 정도 수용하는 세미나실도 일반에 개방할 생각입니다. 동네 아주머니들 계 모임 장소로도 제공할 의향이 있어요."

    ―단행본뿐 아니라 잡지도 꾸준히 모으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죠, 학문적 가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선데이서울'은 옛날에 하류문화의 상징, 도색잡지 취급을 받았죠. 그렇지만 지금은 버젓이 한국 대중문화사의 한 상징이 됐습니다. 요즘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은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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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순 사장은 서울 도심에 있던 헌책방‘고구마’를 경기도 화성시의 한적한 교외로 옮겼다. 헌책방에 책카페와 휴게시설, 음악감상실 등을 더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덕훈 기자
    ―졸업앨범도 꽤 많이 갖고 있던데요.

    "한국이 학벌사회잖아요. 미국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졸업사진만 모두 모아서 판매도 하더군요. 그래서 몇년 전부터 모았는데, 얼마 전 한국교원대에서 교육박물관 짓는다고 해서 2000만원어치 납품했어요. 지금은 한 1만권쯤 갖고 있습니다. 헌책이란 게 긴 안목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그는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을 갖고 청계천 헌책방을 순례했다. 그렇게 헌책과 인연은 맺은 끝에 스스로 헌책방을 차렸다. 그는 "시에 미쳐서 돌아다니고 문학 창작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내 능력의 반은 헌책방, 반은 문학공부에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헌책방 주인이 됐다"고 했다.

    ―헌책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처음엔 값이 싸니까 끌리죠. 그렇지만 책 세계의 무궁무진함, 그 광활함을 깨닫기엔 새 책보다 헌책이 훨씬 더 좋습니다. 어제까지 몰랐던 걸 오늘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되는 그 즐거움, 거기에 중독되는 거죠. 새 책 다루는 건 쉽습니다. 사람들이 찾는 것만 갖다놓으면 되니까요. 헌책은 책을 보는 안목이 있고 책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호주·일본 같은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비주류한테서도 멸시받는 게 헌책방이에요. 나는 정말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구마'는 무슨 뜻입니까.

    인터넷 헌책방 시작하면서 '중앙서적'은 안 되겠다 싶어 지은 이름이에요. 별 뜻은 없고 세 글자나 네 글자로 해야겠다 해서 후보가 여럿이었어요. '히틀러'도 있었고 '장백산맥'도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게 '고구마'였죠. 수더분하고 대중적이잖아요. 단점이 없는 게 장점이기도 하고. 헌책방 이름을 '고구마'로 지을 땐 무척 파격적이었죠."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탐낼 만한 고문서나 희귀본도 갖고 있습니까.

    "백석(白石·1912~96)이 1936년에 낸 첫 시집 '사슴' 초판을 갖고 있죠. 100부 한정판으로 찍어 백석이 정지용(1902~50)에게 선물하면서 친필 사인한 책입니다. 이 책은 내가 5억원에 내놓았어요."

    ―5억원이요?

    "미래 가치까지 포함된 겁니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나 비틀스로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백석 역시 앞으로 그 가치가 점점 상승할 것입니다."

    ―그런 책은 어떻게 구했습니까.

    "너무 세세하게 알려고 하지 마세요. 하하하. 의외로 아주 쉽게 구했어요. 헌책 장사에겐 그런 설렘이 있어요. 오늘은 또 어떤 책을 만날까 하는 설렘이죠."

    ―헌책의 책갈피에서 뜻밖의 물건도 나오겠죠.

    "아이고, 많죠. 1000원짜리 1만원짜리는 자주 나오고, 100만원짜리 수표도 나온 적이 있어요. 근데 이게 누구 책인지 알아야 돌려주지. 그래서 그것 찾은 직원에게 20만원 포상금 주고 나머지는 회식을 했죠. 그것 말고도 각종 계약서, 낙엽, 편지, 엽서… 무궁무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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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에 헌책방 '고구마'를 낸 이범순 사장. 금호동에 있던 헌책방을 화성으로 옮겨 책카페와 휴게시설, 음악감상실 등을 꾸몄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최근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한 가구당 연간 도서 구입비가 2만원쯤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남자들의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술 먹는 것 말고는 문화가 없어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조용히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대화도 되고 가정과 사회도 건강해지죠. 헌책방만 봐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헌책방 '북오프'는 매장 1000개, 직원 6000명이 넘어요. 책을 많이 읽으면 헌책방이 잘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교수들이 공부 안 하고 논문 짜깁기하죠. 그거 학계에서는 죽음이잖아요.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공부 안 해요. 1980년대까지는 공부 많이 했어요. 나는 대학 등록금 내려달라는 게 한심하게 생각됩니다. 요즘 학생들이 등록금만큼 공부는 해봤나?"

    ―교수나 학생들이 공부 안 하는 걸 어떻게 압니까.

    "헌책방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부에 목이 마르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 헌책방이죠. 절판된 책을 구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방대한 장서와 LP를 갖췄으니 기업이나 정부의 투자 또는 지원을 받을 법도 한데요.

    "헌책방에 우리 민족의 역사 5000년을 되돌아보는 통로가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오래 해보니까 그 길이 보여요. 투자할 만한 사람이 그런 인식을 해야 하는데 아직 없습니다. 기업이든 공무원이든."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모든 고전(古典)이 헌책임을 깨달았다. 헐었으나 결코 낡지 않는 책, 그것이 진짜 헌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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