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분노한 목소리가 세계 곳곳의 거리를 점령한 시대. 대규모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에 짓눌린 각국은 복지는 물론 성장조차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는 리더십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전개될까?
"훗날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선택은 명백하지 않은가."
예란 페르손 전 스웨덴 총리는 오는 6~7일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주제로 서울에서 열리는 '제3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참석을 앞두고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총리 재임 시기 재정 개혁을 통해 거품 붕괴와 복지병으로 위기에 빠진 스웨덴을 '유럽의 북극성(North Star)'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개혁을 통해서만 지속할 수 있다. 건강하고 제대로 교육받은 국민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어려운 사람을 무조건 돕는다고 복지는 아니다. 국민을 무지에서 해방시켜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생산적 제도가 진짜 복지다." 이를 위해 그는 리더의 결단을 요구했다. "실천은 고통스럽고 지지율도 떨어지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를 생각해 곳간을 단속하고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는 노조단체 회장이던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르협약'을 이끌어냈고 총리 재임 시기엔 4%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는 말했다. "네덜란드는 큰 나라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다. 천연자원도 별로 없다.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개방을 선택하고 국제 사회의 현실에 빠르게 발맞춰가야 한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협력해야 하고, 네덜란드는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그는 "복지 혜택이 노동시장의 활발한 움직임까지 막아선 안 된다"며 "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통해 시장의 틀을 바로잡아야 하지만 규제가 시장의 진취성이나 위험감수 행위까지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세계적 정치 위기의 원인인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라를 '창업(創業)국가'로 이끄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총리 재임 시기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통해 이스라엘을 획기적인 창업국가로 만든 그였다.
"리더는 실패한 창업가가 재기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푸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한 기업인을 나락에 몰아넣고 어떻게 성공적인 벤처국가로 만들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이 안고 있는 북핵(北核) 리스크에 대해선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혁신적인 기술을 육성한다면 전쟁 중이라도 투자자는 모여들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는 포퓰리즘과 싸우는 돌파형 리더십을 주문했다. 그는 "주변 비판에도 두려워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국민을 설득하는 '정면 승부형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EO 정치가'라는 찬사와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이 엇갈리는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는 "국민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려 한다"고 말한다. "아주 밑바닥부터 돈을 투입해 소비를 살리면 신뢰가 쌓이면서 국내 투자와 해외 투자를 차례로 불러들일 수 있다. 성장과 복지를 달성하기 위한 후진국의 방법은 선진국과는 다를 수 있다."
가난한 말레이족과 소수의 부유한 화교 사이의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한 압둘라 바다위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정치 지도자의 자질로 '공정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강하거나, 부드럽거나, 시끄럽거나, 조용한 것은 단지 지도자의 스타일 문제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인식하는 '강한 확신', 그리고 목표를 향해 가는 '공정한 행동'이다." 20여년 전부터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통해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온 그는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아시아인에게도 성공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중요한 사례"라며 "2005년부터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전통과 첨단 기술을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한국 사회의 리더십에 감명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일본형 자본주의의 침체 원인에 대해 '리더십의 부재'를 이유로 들었다. "최대의 실패는 경제에 거품을 만든 것이었다. 거품을 없애려는 정책도 잘못됐다. 한국처럼 힘들어도 한꺼번에 조치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 정권 교체 후 일본 총리에 올라 '우애(友愛)정치'란 구호 아래 정치 세력의 화합과 개혁을 추구했으나 리더십 약화로 큰 업적을 쌓지 못하고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본주의 4.0
소프트웨어 버전(version)처럼 진화 단계에 따라 숫자를 붙일 때 네 번째에 해당하는 자본주의라는 뜻이다.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1.0), 1930년대 정부 역할을 강조한 수정자본주의(2.0), 1970년대 시장 자율을 강조한 신자유주의(3.0)에 이어 등장한 자본주의를 말한다. 시장 기능을 존중하고 성공한 사람이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장려하되, 낙오한 사람들을 북돋우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기부는 '따뜻한 자본주의'인 자본주의 4.0의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