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는 이번 미·북 회담 결과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한이 그동안 베일에 싸여온 영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시설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에 공개하기로 한 것이 이같은 긍정 평가의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북한의 이 '결정'은 UEP 시설 전체를 공개하는 게 아니라 이미 드러난 '영변 핵 시설'을 대외 협상용 전시물로 내놓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변 UEP는 쇼케이스"

국책연구소의 A 연구원은 "북한은 지금까지 '히든카드'가 준비 완료됐을 때만 기존에 알려진 카드를 공개했다"며 "이번에 보여주겠다는 UEP 시설 외에 숨겨둔 시설들이 더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즉 국제사회의 관심을 영변에 집중시킨 뒤 제2, 제3의 장소에서 훨씬 대규모의 UEP 시설을 은밀히 가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영변 UEP 시설이 실은 '쇼케이스(진열장)'에 불과하고 몸통은 따로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미는 실제 UEP 시설이 존재하는 일부 지역을 파악했으나, 북한이 은닉할 가능성에 대비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과거 북한의 핵 협상 사례를 보면 북한은 자신의 카드를 모두 펼쳐 보인 적이 없다. 1990년대 초 영변 5㎿ 원자로를 놓고 거래할 때는 미국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이미 추출한 상태였다.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벌인 것도 이미 낙후된 5㎿ 원자로에서 필요한 플루토늄을 확보해 이 시설이 더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찰 수용, 핵개발 추인받겠단 뜻"

우라늄 농축 시설은 폐기의 대상이지, 사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종전 핵개발 방식인 플루토늄 재처리는 핵무기로 전용되는 과정을 감시할 수 있지만, 새로운 핵 개발 방식인 우라늄 농축은 단기간에 장소를 숨겨가며 진행할 수 있는 만큼 사찰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IAEA 사찰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며 "북이 IAEA 사찰관들에게 영변 농축우라늄 시설이 실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이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인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실제 북한은 2010년 11월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소장에게 영변 UEP 시설을 공개한 뒤 틈만 나면 IAEA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2010년 12월 방북한 빌 리처드슨 당시 미 뉴멕시코 주지사와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이 이같은 북한의 뜻을 전했었다.

영변서만 매년 핵폭탄 1~2개 가능

2010년 11월 당시 헤커 교수는 방북 보고서에서 영변에 원심분리기 1000여개가 정교하게 설치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초현대식 통제실에서 제어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원심분리기 2000개가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연간) 최대 40kg의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핵 전문가들은 "변수가 너무 많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제조 능력을 단정 짓기 어렵다"고 말한다. 북한의 열악한 전력 사정을 감안할 때 원심분리기가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원심분리기는 일종의 '전기 먹는 하마'"라며 "북이 의도적으로 UEP 능력을 과장하면서 협상력을 높이려 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UEP(Uranium Enrichment Program)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약자다. 핵무기는 크게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원재료로 삼아 만든다. 지금껏 알려진 북한 핵개발은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통해서 이뤄진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2002년 이후 북한이 비밀리에 원심분리기를 활용한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온 사실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