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보험 1등

조선일보
입력 2012.03.02 03:07 | 수정 2012.03.02 09:57

청각장애인 설계사 최정민씨
"수화와 필담으로 상담… 팔도 아프고 오래 걸리죠, 그렇게 주당 2건 이상 계약
장애인은 안 된단 편견 깨러 오늘도 고객 만나러 갑니다"

"일반인들과는 일일이 종이에 적어가며 필담(筆談)해야 하니 1시간 보험 상담에 A4용지가 10장도 넘게 필요해요. 팔도 아프고 남들보다 시간도 몇 배 더 걸려요. 하지만 '장애'라는 벽을 깨기 위해서라면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AIA생명 수원지점 최정민(28) 보험설계사는 수화 통역을 대동한 인터뷰 내내 손으로 열변을 토했다.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청력을 잃은 1급 청각·언어 장애인인 그는 쉬운 길 대신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보험 설계사를 직업으로 택했다. 전국의 청각장애 보험설계사는 9명(생명보험 쪽은 최씨 포함 3명, 손해보험 쪽은 6명)으로, 그 중 최씨 실적은 단연 두드러진다. 2010년 하반기부터 영업을 시작했는데, 작년 9월 이후부터 벌써 지점에서 계약 실적 1~2위를 달리고 있고, 현재까지 13주째 주당 2건 이상 보험 계약을 성사시켰다.

1급 청각·언어 장애를 딛고 보험 설계사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최정민씨가 수화로 “괜찮아”라는 말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1급 청각·언어 장애를 딛고 보험 설계사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최정민씨가 수화로 “괜찮아”라는 말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대구대 전산통계학과를 졸업했지만,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최씨는 원래 은행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청각장애인이 취직할 수 있는 분야는 단순업무뿐이었다. 실망하는 그에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혹시 보험 설계사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엔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어 망설였지만, 쾌활한 성격의 그는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국내 청각장애인은 약 30만명. 장애 탓에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지만, 20~30%만 보험에 가입한 현실도 최씨를 자극했다.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10년 2월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2주간 신입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2주씩 수화 통역을 해 줄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최씨가 근무할 지사의 매니저에게서 1대 1 교육을 받는 것으로 신입 교육을 대체했다. 최씨는 "보험 지식이나 영업 매너를 매니저님이 전부 손으로 써서 설명해 주셨는데 열흘 동안 종이를 이만큼 썼다"며 엄지와 검지를 약 5㎝ 넓이로 벌려 보였다.

탄탄한 청각 장애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신규 고객층을 뚫기 시작했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 기껏 청각장애인 가입 대상자로부터 보험 가입 동의를 받았는데, 비장애인 부모가 "자식이 세상 물정 몰라 한 말"이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부모 합석하에 다시 몇 시간 설득전에 나선 적도 있었다. 최씨가 종이에 보험 약관을 한 자 한 자 적고 있노라면 "못 참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꾸준히 상담해 고객이 드디어 보험 청약을 했는데, 심사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라고 일부 상해특약 가입을 거절당하는 바람에 고객이 보험 자체를 취소해 버리는 경우가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최씨는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나갔다. 화상 전화기를 구입해 주말·밤낮을 가리지 않고 청각장애인 고객들과 화상 수화로 대화하고, 스마트폰 화상 수화, 카카오톡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 사이 고객은 조금씩 늘어나 현재 100명(80%가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고객들에게 더 쉽게 보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수화 화법을 연구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레크리에이션과 웃음치료자격증(1급)까지 땄다. "'청각장애인은 안 돼'라는 편견을 깨고 싶어요. 저를 보고 많은 장애인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꼭 금융과 보험 분야 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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