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수도 하노이시(市) 한복판에 자리 잡은 '베트남 국립아동병원' 소아 심장센터. 지난 10일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이흥재 교수와 흉부외과 전태국 교수가 선천성 심장 기형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운 5㎏의 갓난아기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댔다. 아기는 한 달 전, 대동맥과 폐동맥이 완전히 뒤바뀌어 심폐 순환이 뒤죽박죽인 상태로 태어났다. 수술 난도가 가장 까다로운 복합 중증(重症) 기형 환자였다.
지난 2003년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베트남 병원'은 아주 간단한 심장수술조차 할 줄 몰랐다. 그로부터 9년 뒤 태어난 이 아기는 한국 의사들에게 심장수술을 배운 베트남 의사 두 명으로부터 수술을 받았다. 이날 이흥재 교수가 댄 청진기에선 '꽁딱! 꽁딱!' 힘차게 굴러가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지난 9년간 이뤄진 '대(對)베트남 심장수술 지원 사업'이 성공적으로 종료된 것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는 또한 40년을 이어온 미국-한국-베트남의 '심장수술 지원 릴레이'가 성공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인은 한국 어린이 3300명에 새 심장 찾아주고
1972년 한미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해리엇 하지스(96) 여사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미국 병원에 데려가 무료로 수술을 받게 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린 아이를 완치시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심장병 아기 부모가 하지스 여사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심장수술 지원은 2003년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총 3300명의 아이에게 새 심장을 찾아줬다. 70년대 중반 서울대병원 소아과 수석 전공의를 하던 이흥재 교수는 미국행 심장병 어린이를 선정하고, 미국에 보낼 검사 자료를 챙기기에 바빴다. 간호학과 교수이던 그의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 통역과 간호를 맡았다.
이 교수는 "그때 우리나라 의술을 빨리 발전시켜 한국에서 아이들을 고쳐주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당시 심장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지금 교수와 교사, 기업인 등 사회 주역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하지스 여사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보은(報恩) 파티'를 열어주곤 한다. 한국 정부도 하지스 여사에게 '감사 훈장'을 수여했다.
◇이번엔 한국인이 베트남 어린이를 살려
2003년 여름, 삼성서울병원 심장센터 소장이었던 이흥재 교수 앞으로 베트남 국립아동병원이 보낸 팩스 한 장이 도착했다. "지금 베트남에는 선천성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 수많은 아이가 수술을 못 받아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심장 수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교수는 그해, 추석 연휴 기간을 이용해 흉부외과 전태국 교수 등 의료진 7명을 이끌고 하노이로 향했다. 개인 휴가를 이용한 자원봉사였다. 한국 의사가 주도하고 베트남 의사가 보조한, 하노이 최초의 심장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의료진은 매년 두세 차례 하노이를 방문해 심장수술법을 전수했다. 한편으로는 베트남 흉부외과·소아과·마취과 의사와 중환자실 간호사 등 총 67명을 삼성서울병원에서 수개월~1년간 연수를 받게 했다. 비용(약 6억원)은 삼성전자 하노이 법인이 댔다.
그 결과 지난해 '베트남 병원'은 440건의 수술을 하는 베트남 최대 소아 심장센터로 성장했다. 올해는 900건 수술이 예상된다. 하지스 여사에게 훈장을 수여한 한국처럼, 베트남 정부도 이 교수와 전 교수에게 외국인 대상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이 교수는 "심장병에서 완쾌된 베트남 아이들이 커서 인터넷으로 안부 인사를 전해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