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에게 파리의 카페 거리와 상가 아케이드를 기웃거리며 산책하는 기쁨은 '살아 있다는 실존적 경험'이었다. 그는 아치형(形) 기둥 사이로 건물 1층에 들어선 상점 사이를 거니는 것은 '눈에 미식(美食)'이라고 했다. 10여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미래학자 토플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기호(嗜好)별로 특화한 뉴스를 담은 인터넷 사이트들이 번성하면서 종합 뉴스 사이트들은 쇠망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우려 섞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분야별 정보만을 다루는 전문 뉴스 사이트만 봐서는 이곳저곳의 얼핏 무관해 보이는 정보를 연결해 숨겨진 트렌드를 찾아내는 '횡재(serendipity)의 기쁨'이 없죠."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고 점원의 호객(呼客)에 시달리지 않고 익명으로 조용히 쇼핑하고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군중 속의 고독을 기꺼이 즐긴다. 그러나 인터넷 생활은 정반대다. 갈수록 특정한 몇 개 대형 웹사이트에 몰린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인터넷 이용 시간의 7분의 1을 전 세계에서 8억5000만명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 업체인 페이스북에서 보낸다. 사적(私的) 정보도 기꺼이 포기한다. 우리는 페이스북에 친구 관계, 기호, 결혼 여부, 사진, 관심 분야 등 모든 것을 다 공개하고, 페이스북은 이것으로 개인 입맛에 딱 맞을 법한 광고를 접속 때마다 보여준다. 페이스북은 작년에 37억달러를 벌었다. 이용자 1인의 정보로 연간 4.39달러를 번 셈이다. 올해 4월쯤 기업공개(IPO)를 할 경우 예상되는 페이스북 기업 가치는 750억~1000억달러에 이른다. 결국 이용자 1인의 정보 가치는 88~117달러이다. 원하는 음악과 영화를 클릭하고 관심 품목을 장바구니에 넣는 순간, 우리는 개인 정보를 온갖 광고업체에 넘긴다. 오죽하면 페이스북에 개인 정보를 공짜로 주느니 120달러에 팔라는 개인 정보 수집 회사가 등장했을까.

국내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와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와 SNS 사이트 몇 곳이 웹사이트 방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장조사 기관 엠브레인의 작년 9월 조사에 따르면, 하루 6~7개 이하의 사이트만 접속하는 네티즌이 전체의 57.4%다. 닐슨 코리안클릭의 최신 주간 집계(2월 13~19일)를 봐도, 이용자들이 한 주에 방문한 웹사이트는 통틀어 30개를 밑돈다.

물론 인터넷 어디에서든 더 이상 '익명의 산책'이란 불가능하다. 최근 미국 광고업계의 집요한 인터넷 이용자 정보 추적 현실을 다룬 '데일리 유(Daily You)'라는 책을 낸 펜실베이니아대의 조지프 터로우 교수는 "내가 며칠 전 아내에게 보낸 밸런타인 e카드는 모두 15개 업체에서 내용물까지 파악하고 좇고 있었다"고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에 밝혔다.

하지만 한때 '내비게이트(navigate)' '서프(surf)' 같은 단어로 표현되던, 인터넷 웹사이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항해'하던 인터넷 이용 행위는 어느덧 한 웹사이트에서 이뤄지는 '서치(search)'로 바뀐 지 오래다. 동시에 점(點)과 점을 찾아 선(線)을 읽어내는 기쁨도, 비록 엉터리 정보가 많더라도 '원스톱 서비스'인 네이버 '지식인'이나 위키피디아 웹사이트가 주는 편리함으로 대체됐다. '정보의 보고(寶庫)'일 수도 있었던 인터넷이 이제 제2의 편리한 '바보상자'가 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杞憂)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