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도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가깝고 섬의 낭만을 즐길 수 있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강화를 찾는다. 인삼과 화문석, 순무 등 특산품도 많다. 그러나 강화도에 고려시대 유적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고려시대 유적이 조선시대 유적보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관광객들이 강화에 들러도 관심있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강화의 고려 유적을 발굴·복원하여 강화를 경주나 부여 못지않은 역사 유적지로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르면 올 상반기에 고려강화역사문화재단을 설립한다. 재단은 고려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강화가 39년간 고려 수도였음을 널리 알려 강화를 한국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내달 간담회 열어 여론조성

인천시는 3월 시민사회단체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갖고 고려강화역사문화재단 설립 시기와 운영 방법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시는 시민단체가 재단 설립에 찬성하는 등 여론이 호의적이면 5월 중 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인천문화재단에 별도 팀을 만든 뒤 단계적으로 재단을 만들어 갈 방침이다. 역사 전공자 2명을 우선 채용한다. 재단 위치는 강화 고인돌 공원 인근을 검토하고 있다.

39년간 고려 수도였던 강화도에는 고려 역사 유적이 많이 있다. 사진은 고려궁궐이 있던 곳.

인천시는 오래전부터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강화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송영길 시장도 선거 당시 강화역사재단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지난해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전문가들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산이 항상 재단 설립의 발목을 잡았다. 재단 설립·운영에는 3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문화재청 등 중앙 정부 지원을 이끌어내려 노력하고 있으나 문화재청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강화만의 특색이 보이지 않는다며 지원에 난색을 표시해왔다. 시민단체들도 예산 문제 때문에 재단 설립에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다.

인천시는 올해 5억원으로 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2014년까지 재단 운영을 궤도에 올려 놓으려 했으나 예산문제로 2018년까지로 늦췄다. 인천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에 "남한에서는 강화에 고려 유적지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최대한 부각시켜 지원을 이끌어 내겠다는 구상이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시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재단이 설립되면 고려 왕릉 등 각종 유적들을 집중 점검·발굴·복원해 나갈 방침이다. 고려와 관련된 각종 행사도 펼쳐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선원사에서는 '고려대장경 1000년'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인천시는 고려 수도였던 북한의 개성과 강화를 연계한 남북 문화 협력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고려, 몽골에 저항하려 강화 천도

강화에는 고려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들이 많다.<지도 참고> 고려궁지·강화산성·홍릉(고려 고종의 능)·삼별초호국비·선원사지(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곳으로 알려짐)·이규보묘 등이 대표적이다.

몽골의 침략에 시달리던 고려는 1232년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몽골과 맞선다. 섬 주변의 해안선이 복잡하고 물살이 험해 해상 전투 경험이 별로 없는 몽골군의 저항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1270년까지 강화는 고려 수도 역할을 한다. '강도(江都) 39년'의 역사가 펼쳐진 것이다.

강화도 북쪽에 위치한 고려궁지는 고려 왕들이 머물렀던 궁궐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오랫동안 외규장각 등 조선시대 유적이 더 눈에 띄었다. 고려 궁궐과 관련된 증거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고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궁지에서 청자류와 기와류 등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됐으며 고려시대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해주는 석축이나 석단도 드러났다.

강화산성은 몽골의 침입에 항전하기 위해 지어졌다. 궁궐을 둘러싼 성 주위로 다시 성을 쌓고 강화 동쪽을 따라 외성이 구축됐다. 고려궁궐과 강화산성은 1270년 몽골과 화친을 맺으며 허물어졌다. 고려사에는 "강화산성이 무너질 때 모두 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초 성을 쌓지 않았던 것만 못했다고 병사들이 울부짖었다"는 내용이 있다.

선원사지는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팔만대장경은 국보 32호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몽골군에 항전하다 제주도로 옮겨간 삼별초의 호국비도 강화에 있다.

당시 실권자였던 무신 최우의 협박에 천도를 결정해야만 했던 비운의 왕인 고려 23대 고종의 능 '홍릉'을 비롯해 희종의 석릉, 왕비의 능인 곤릉·가릉도 있다. '동명왕편' '동국이상국집'을 저술한 고려시대 학자 이규보는 말년을 강화에서 지내다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