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대교를 지나다 보면 남단 끝쯤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은빛 인공섬 3개가 있다. 서울시가 민자(民資)와 산하기관(SH공사) 투자금 964억원을 끌어들여 지난해 5월 임시 개장한 '세빛둥둥섬'이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 '세빛둥둥섬'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정식 개장은 오리무중이다.
지난 17일 둘러본 '세빛둥둥섬' 주변은 겨울이라 인적도 드물고 물가에 살얼음마저 끼어 적막한 풍경이었다. 지나던 시민 김진순(57)씨는 "신기하긴 한데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만든 지가 언젠데 아무것도 안 하고…. 한강에 '흉가'가 떠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세빛둥둥섬'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상징적인 시설물. 그러나 오 시장이 제대로 마무리 하지 않고 물러난 상태에서 박원순 시장은 '정권'을 넘겨받은 뒤 '세빛둥둥섬'을 비롯, 각종 '한강르네상스' 관련 사업을 하나둘 쓰레기통에 넣고 있다. 노들섬에 지으려던 '오페라하우스' 자리는 논밭으로 바꾸고, 반포대교 난간에 설치한 '달빛무지개분수'도 가동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한강에 유람선을 띄우려는 구상을 백지화하면서 '수상호텔'이나 '서울항(여의도종합여객터미널)'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강르네상스' 뒤안길로
'세빛둥둥섬'은 지난해 5월 건물 외관을 대부분 완공하고, 전망 공간 등 일부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 뒤 9개월 동안 '겉껍질'만 둔 채 내부 마무리 공사는 답보 상태다. 카페를 만들려던 공간에는 간판만 덩그러니 달린 채 먼지 덮개로 시설물이 덮여 있고, 건물 입구도 군데군데 막아뒀다.
지난해 이 인공섬 민간사업자 ㈜플로섬은 자금조달 문제 등으로 임대 운영사 선정을 취소했다. 그 뒤 운영사를 구하지 못해 지금은 직영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이러다 보니 실제 개장 시기는 빨라야 하반기에나 가능할 전망. 이조차 불투명하다.
이에 앞서 ㈜플로섬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운영 기간을 25년에서 30년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을 시 한강사업본부가 슬며시 들어준 것을 두고, 박 시장이 "제대로 보고 않고 처리했다"며 격노하자, 다시 기간을 재검토하고 있다.
'한강르네상스'를 구성했던 다른 사업도 줄줄이 백지화되고 있다. 오페라하우스·콘서트홀 등으로 쓸 '한강예술섬' 자리에는 도시농업공원을 조성하기로 했고, 300인승 규모 유람선 '한강아라호'는 매각하기로 했다. 서해와 한강을 잇는 15㎞ 뱃길을 만드는 '서해뱃길' 사업도 구조조정 대상이다. '수상호텔'과 '서울항(여의도종합여객터미널) 조성' 등은 사실상 좌초됐다.
시 관계자는 "(과도한 예산을 투입했다는)감사원 지적도 있었던 만큼 전문가들 함께 사업조정회의를 열어 의견을 듣고, 상반기 중 사업 진행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지개분수'등 운영시간 감축
오 전 시장이 추진했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접는 대신 박 시장 체제에서는 '전시성'이란 비판을 들었던 사업은 대폭 줄이고, 시민참여프로그램은 늘린다는 복안이다. 시는 한강공원 내 달빛무지개 분수 등 8개 분수 평일 주간시간대 운영 시간을 대폭 줄이고, 휴일이나 야간 시간에 주로 가동할 계획이다.
또 올 3월부터 한강공원에 친환경농장을 꾸며 시민주도 농작물 재배 공간을 만들고, 시민 참여 행사도 늘릴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시는 한강의 모습을 어떻게 복원·보존할지 '한강복원시민위원회'를 꾸려 전면적으로 새 밑그림을 짠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환경·시민단체, 시의원,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한강복원시민위원회'를 만들고, 한강 복원에 관련한 연구 용역을 맡겨, 9월까지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한강 수중보인 잠실보(洑)와 신곡보를 철거하거나, 한강을 예전 모래사장이 있던 공간으로 복원하자는 주장도 시민 의견이나 계획 수립절차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복원'이라고 해서 한강을 예전 자연 상태 그대로 무조건 원상복구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