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밸런타인데이를 부끄럽게 한… 북한 처녀·베트남 총각 '40년 사랑'

조선일보
  • 오윤희 기자
    입력 2012.02.16 03:00 | 수정 2012.02.16 14:32

    BBC, 리영희·칸의 러브스토리 특집 보도
    1971년 평양서 사랑에 빠져 30년간 편지로만 애정 키워
    北당국 "그여자 죽었다" 방해, 그래도 포기않고 끝까지 찾아 男 54세·女 55세 때 결혼
    이젠 60대 중반 접어든 부부… 하노이에서 조촐한 행복

    1971년, 북한 평양으로 유학 간 23세 베트남 청년 팜 녹 칸(Canh)씨는 화학 실험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북한 여성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그보다 한 살 많은 여학생 리영희씨였다. 훗날 그는 지인(知人)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내 아내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은 1년6개월간 연애했지만 당시 베트남 정부가 국제결혼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결국 그는 1973년 홀로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경도 이들을 가로막지 못했다. 둘은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키웠고, 2002년 50대의 나이에 드디어 부부의 인연을 맺기에 이르렀다. 두 부부의 사연은 2002년 결혼 당시에도 화제가 됐고 지면을 통해 보도됐다. 영국 BBC 방송이 14일(현지시각)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결혼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두 사람의 사연을 소개했다.

    북한의 리영희씨가 베트남 팜 녹 칸씨에게 보낸 편지.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서신왕래가 둘의 사랑을 지켜온 매개였다. /BBC 제공
    칸씨는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에도 스포츠팀 통역원으로 수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리씨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정부 당국 몰래 편지 왕래도 계속했다. 하지만 북한 정부가 주민과 외국인 간 접촉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바람에 1992년엔 리씨의 편지가 끊겨 버렸다. 마지막 편지엔 "우리가 나이를 먹었을지 몰라도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여전히 젊다"고 적혀 있었다.

    칸씨는 리씨와 20여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들고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그녀의 소식을 듣고 싶다. 생사 여부를 확인해 달라"며 사정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비료 공장에서 일하던 리씨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거나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칸씨는 북한 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2001년 베트남 정치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칸씨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베트남 대통령과 외무장관에게 자신의 사연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몇 달 후 칸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가 30년간 기다렸던 대답, 리씨와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기다림의 세월이 길어서였을까. 국경과 제도의 장벽을 뛰어넘어 30여년 만에 부부의 인연을 맺은 팜 녹 칸씨와 리영희씨는 세월의 공백을 메울 만큼 서로를 살뜰하게 보듬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시내에선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나란히 앉아 나들이 나온 부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BBC 제공
    이듬해 54세 칸씨와 55세 리씨는 하객 700여명의 축복을 받으며 베트남 하노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60대에 접어든 부부는 하노이의 조촐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하노이 시내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손을 잡고 가는 그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BBC는 전했다.

    칸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내에 대한 내 감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똑같다"고 말했다. 리씨도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헤어질 때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30년 동안 결혼도 안 하고 나에게 편지를 썼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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