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은 할아버지가 들려준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할아버지는 1926년 한국을 여행하면서 유물 발굴 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이 박물관이 아름다운 한국 유물을 보유하게 된 데는 할아버지의 이런 공헌도 한몫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증품이 포함된 유물을 많이 전시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스웨덴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으면 합니다."
11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셰프스홀멘 섬의 동아시아박물관에서 상설 한국실이 문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유물은 신라시대 금귀걸이 한쌍. 경주 서봉총(瑞鳳塚)에서 출토된 이 금귀걸이에는 구스타브 국왕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다.
구스타브 국왕의 할아버지는 구스타브 아돌프 6세. 고고학자인 그는 왕세자 시절인 1926년 신혼여행차 아시아를 여행하던 중 한국을 방문해 경주에서 진행되던 서봉총 발굴에 참여했다. 그는 출토된 금관을 손수 채집했는데, 이 금관에는 세 마리의 봉황 모양이 장식되어 있었다. 서봉총이란 이름도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에 장식돼 있던 '봉황(鳳凰)'에서 한 글자씩 따서 붙였다. 그가 스웨덴에 돌아가 이 박물관에 기증한 금귀걸이가 새로 만들어진 한국관에 전시된 것.
한국실은 중국·일본실에 이어 이 박물관에 세 번째로 설치된 상설 국가 전시실. 한국실 설치는 한·스웨덴 수교 50주년이었던 지난 2009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과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이 협약을 맺으며 본격 추진됐다.
박물관 3층에 100㎡ 규모로 설치됐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도자기, 서화, 생활용품 등 350여점을 전시하게 된다. 중국·일본관이 어둡고 긴 복도를 따라 관람하게 돼 있어 아시아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한국관은 한옥 전문가인 황두진(49)씨가 디자인을 맡아 한국적 정취를 살렸다. 그는 서울 가회동에 지은 한옥 '엘(L) 주택'으로 지난해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황씨는 "마당과 툇마루, 방을 오밀조밀하게 누비는 한옥의 동선을 전시실에 적용했다"며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은은하게 살렸다"고 했다.
전시실 창문으로는 햇빛이 들어온다. 직사광선이 아니라 창호지를 통과한 은은한 햇빛이다. 옛 해군 기지였던 박물관 건물은 창문이 벽돌로 막혀 있어 빛이 들어오지 않는데, 예외적인 경우다. 황씨는 "한국 건축에서는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박물관 측을 설득했다"며 "손바닥 크기 정도는 창호지를 붙이지 않고 남겨 둬서 창 밖 풍경이 보이게 했다"고 했다.
"소장된 유물 가운데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초상화가 인상적입니다. 그 초상화 속 인물을 가상의 주인으로 하고, 전시실을 그의 방처럼 꾸몄습니다."
전시실 곳곳에는 나무로 벤치를 만들었다. 벤치 안에는 라디에이터를 넣어 앉으면 온돌처럼 온기가 느껴진다. 관람객들이 잠시 쉬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방 안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 전시실 천장은 오래된 건물의 나무 보를 그대로 남겨두고, 바닥재도 나무를 사용했다. 사네 후비-닐슨 동아시아박물관장은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디자인을 좋아하고 목재를 많이 쓰는 한국적 디자인이 잘 드러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