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파생금융상품의 작년 거래량이 38억1900만건으로 전 세계 거래량의 27%를 차지하며 3년 연속 세계 1위를 지켰다. 유럽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유렉스(EUREX)가 14억400만건으로 2위에 올랐지만 거래량은 한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증권시장은 시가총액으로는 세계 16위, 거래대금으로는 7위 규모다. 그러면서 증권 거래에 따르는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든 파생상품 거래량이 압도적 세계 1위인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욱이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선 주가지수옵션 상품 거래량이 36억7200만건으로 전체 거래량의 96%를 차지한다. 개별 주식 선물(先物)과 옵션, 주가지수 선물 등 다양한 상품이 골고루 발달하지 않고 몸통 어느 한 부분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기형적 시장이다. 파생상품 거래 세계 1위라는 기록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파생금융상품은 운이 좋으면 수십, 수백 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잘못되면 쪽박을 찰 수 있는 투기적(投機的) 상품이다. 어느 한쪽이 이익을 낸 만큼 다른 쪽이 반드시 손실을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어서 개인투자자가 뛰어들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미'들이 몰려들고 있다. 위험을 회피한다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도박판으로 변질돼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작년엔 어느 개인투자자가 주가지수가 내려가면 이익을 보는 상품에 투자한 뒤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려 사회불안으로 인한 주가 하락을 노린 사건도 있었다. 은행·증권사들이 자기들도 잘 모르는 파생상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데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도 작년 말 주가지수옵션의 최소 거래 단위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는 것을 비롯해 규제방안을 마련하고 3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 효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우리 사회의 병적(病的) 투기심리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파생상품 시장이 균형 있게 발달할 수 있도록 꾸준한 감독과 보완이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