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국회 국방위원회 주변에선 아침부터 "군 지휘 구조 개편안을 골자로 한 국방 개혁안의 18대 국회 처리가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국군조직법 등 국방 개혁과 관련한 5개 법안이 이날 오후 예정된 국방위 전체 회의 안건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날 국방위에서 표결 처리가 안 되면 오는 16일 회기가 끝나는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여야 정치권이 4월 총선 체제로 들어가면서 5월 임기가 끝나는 18대 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김관진 장관의 마지막 호소

김관진 국방장관은 오후 2시 국방위 전체 회의에 앞서 원유철 국방위원장실에 들렀다. 김 장관은 미리 와 있던 민주통합당 박상천 의원을 보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한(2015년 12월 1일)은 다가오는데 개혁안 처리가 안 되니 마음이 다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박 의원은 "나는 국방 개혁안에 찬성인데 (민주당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당 지도부 지시를 받는 입장이라서…"라고 했고, 김 장관은 "미국의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트렌드를 따라갈까 주저하다가 망했다. 육·해·공군 간 합동성(合同性) 강화는 1980년대 이후 (세계적인 군사) 추세인데 정치 논리에 막혀있어 아쉽다"고 했다.

이후 원 위원장과 여야 국방위 간사는 국방 개혁안 상정 문제를 다시 한 번 논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했고 이날 결국 국방 개혁안은 상정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이래 20여년간 역대 정부마다 추진하다 번번이 좌절된 군 상부 지휘 구조 개편이 국회의 문턱에 걸려 사실상 좌초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정치의 논리에 국방대계(大計) 발 묶여

현 정부의 국방 개혁안은 정파(政派) 간 입장과 현역과 예비역, 육·해·공 각 군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국회에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김 장관은 최근까지 국회 국방위원들을 총 200여차례 개별 접촉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여당의 정치력 부재와 의지 부족, 야당의 반대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새누리당은 작년 정기국회 때부터 "자유투표로 표결 처리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번번이 민주당의 반대를 들어 표결을 주저해왔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당이 야당을 설득할 의지도, 전략도 부재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매번 이런저런 조건을 내세워 "다음 국회 때 논의하자"며 논의를 미뤄왔다.

여야 모두 겉으로는 "정파성을 배제하자"면서 당론(黨論)을 정하지 않은 채 국방위에 일임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 개혁안에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생각이 앞서 국방 개혁안 처리를 막았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위원장을 비롯한 친박 역시 국방 개혁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한 국방위원은 "여당은 야당이 당론으로 반대하고 나올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야당은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국방 개혁안에 관한 당론을 정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지도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옥이 의원도 이날 의사 진행 발언에서 "(작년 6월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국민의 78%가 국방 개혁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처리하지 않는다면 국가 안보를 거론할 자격 있는가"라고 말했다.

답답한 국방장관 - 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깊은 생각에 잠겨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의 대(對)국회 설득 마비

작년 연말부터 여당 내에서 이 대통령과 차별화 바람이 일면서 청와대의 대(對)국회 설득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됐고 이후 국방 개혁안 처리와 관련해서는 김관진 장관이 혼자 국회를 상대하다시피 했다. 김 장관은 이 과정에서 최근 박근혜 위원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발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이 국방 개혁안에 대한 해·공군의 미온적 태도와 일부 예비역 장성의 반발을 의식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한 국방위원은 "여당은 전통적인 지지층인 예비역들의 반발이 있는 상황에서 국방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를 꺼렸고, 야당은 해·공군과 예비역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해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