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생물학적 완성도'

조선일보
  • 박해현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12.02.06 23:31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남자 주인공 스탠리는 가장 '마초(macho)'다운 인물이다. 스페인어로 남성을 뜻하는 마초는 영어권으로 건너와 '남성우월주의자'로 통해왔다. 근육질의 거친 사내 스탠리는 "나폴레옹 법전에 따라 아내의 재산은 남편에게 귀속된다"며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작가는 스탠리를 통해 '현대인의 동물적 냉소주의'를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1995년 공지영은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한국 사회의 마초문화를 비판하며 페미니즘 문학 바람을 일으켰다. 2008년 여성학자 전희경은 책 '오빠는 필요없다'를 통해 '좌파 운동권의 마초'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무슨 여성운동이 있어. 그냥 민중해방이 되면 그게 여성해방이지"라고 하는 게 '좌파 마초'들이다. 운동권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지자 남성 지도부가 피해 여성에게 "네가 그냥 넘어가라"며 회유한 일도 있었다.

    ▶지난달 20일 비키니 차림 여성이 정봉주 전 의원 석방을 요구하며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고 가슴에 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나꼼수'는 이 사진을 놓고 "정 전 의원은 성욕 감퇴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라″며 비키니 시위를 부채질했다.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라는 성적(性的) 언사도 내뱉었다가 비난 여론에 부닥쳤다.

    ▶공지영은 "마초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징(性徵)을 드러내는 방식에 반대한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이 지난 4일 해명했지만 '마초' 논란을 더 키우고 말았다. 그는 비키니 사진에 대해 "우리가 (그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한 것도 사실이고, 신선한 시위방법에도 감탄했다"고 했다. 여성의 가슴 크기를 빗댄 '생물학적 완성도'라는 말이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어느 네티즌은 "키 180㎝ 이하 남성은 '루저'라고 했던 여성도 자신의 생물학적 완성도 기준치에 따라 말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루저' 발언은 2009년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방송돼 키 작은 남자들의 분노를 샀다. KBS는 그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새로운 미디어 권력이 된 '나꼼수'가 책임있는 방송의 모습을 보여줄까. '나꼼수'는 '생물학적 완성도'라는 말로 꼼수를 던졌다가 제 꼼수에 걸려든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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