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The Kid with a Bike)은 보는 내내 가슴을 졸이게 만듭니다. 아빠(제레미 레니에)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육원 소년 시릴(토마 도레)이 겪는 가혹한 운명이 안쓰럽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아빠에 대한 대책없는 그리움과 분노로 방황하는 11살 소년에게 세상은 너무 위험합니다. 도처에 폭력이 꿈틀대고, 소년에겐 뒷골목 불량 청소년들의 손길까지 다가옵니다.
이 메마른 이야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릴의 위탁모가 되는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라는 여성입니다. 아빠를 찾겠다며 보육원을 탈출한 소년은 도주의 과정에서 사만다과 우연히 만납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녀는 엄마처럼 소년을 돌보며 소년을 절망의 늪에서 조금씩 건져올립니다.
몇 번을 울어도 모자라는 고통속에 있는데도 영화에서 소년의 눈물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울어야 할 순간마다 소년은 자전거에 올라타 한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질주는 반항과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어린 영혼의 절규이고 울음입니다.
세상살이의 고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에서 비범하게 느껴졌던 건 스토리가 아니었습니다. 설명해야 할 법한 부분에 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 관객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르덴 형제의 독특한 화법입니다.
가령 소년과 아빠의 사연에 관한 묘사에서부터 영화는 명백히 여백을 남겨놓습니다. 아빠가 시릴을 보육원으로 떠나 보내고는 집마저 이사해 연락을 끊은 까닭이 뭔지, 엄마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어디 있는지 등에 관해서 이렇다할 설명이 없습니다. 시릴이 아빠가 일하는 식당을 찾아갔을 때, 아빠는 시릴의 면전에서는 “지금은 널 데려갈 수 없어. 돈을 모아야 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만다에게 따로 이야기할 땐 “저 아이 자체가 내게 스트레스여서 만나기 싫다”고 털어놓습니다. 왜 그렇게도 매정하게 내치는지 역시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사만다라는 여성의 사연도 알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그녀는 아무런 댓가도 없이 소년을 보살핍니다. 사라진 소년의 자전거를 찾아내 주머니를 털어 구입해서는 소년에게 선물합니다. 위탁모가 되어 보살펴 주고, 소년이 저지른 잘못의 뒤처리를 하느라 적지 않은 돈을 대신 물어줍니다.
사만다의 보살핌은 일반적인 연민이나 동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그걸 보여 주는 건 소년과 사만다의 첫 조우 장면입니다. 보육원을 무단 탈출했다가 다시 붙들리지 않으려고 어느 병원 대기실을 질주하던 소년이 그 곳에 사만다의 몸을 엉겁결에 꼭 붙잡습니다. 이 돌발상황에서 뜻밖에도 사만다는 당황하는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잡아도 되는데 너무 세게 잡지는 마…” 시릴과 사만다의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소년은 자신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사만다에게 ‘주말 엄마’가 되어달라고 먼저 제안합니다.
사만다의 남자친구는 반항아 같은 소년을 아무런 댓가 없이 보듬는 사만다와 다툰 끝에 떠나갑니다. 사만다는 연인과의 이별도 감수하며 소년을 품습니다. 예사롭지 않습니다. 소년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차 밖으로 뛰어내리려 할 때도, 소년을 꼭 붙들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 건네는 그녀 모습엔 남다른 게 있습니다. 소년이 동네의 불량 청소년들 꼬임에 빠져 사고를 쳐도 그녀는 소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런 대목마다 사만다에게선 ‘나는 너와 같은 아이들을 잘 알아’라는 듯한 속깊은 이해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다르덴 형제는 이 여성의 생각과 사연에 관해서도 이렇다할 설명을 해 주지 않습니다.
감독의 고의로 보이는 이 생략들은 세상에서 목도하는 여러 굴곡 많은 사연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년의 아빠는 왜 그렇게 됐을까’, ‘어쩌면 사만다의 아주 가까운 곳에 시릴과 같은 처지의 어린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가 마련해 놓은 여백들이 생각을 펼치는 재미를 알게 해 줍니다. 보여주지 않기에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라디오 드라마처럼.
사실 얼마나 많은 글과 영화들이 너무 친절하게 다 말하려다 ‘맥빠진 군더더기’를 남기는지요. 관객 스스로 끊임없이 채워가게 하는 다르덴 형제의 미니멀한 화법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불안에 빠졌던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의외의 결말은 소년의 미래에 관해 역시 많은 것을 여백으로 남겨놓습니다. 다르덴 형제는 ‘세상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곳만도 아니지만, 또 그렇게 절망적인 곳만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저 먼 나라를 배경으로 찍은 이 영화 속에 오늘 이 땅에서 만든 영화들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세상의 리얼한 풍경을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