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또다른 마약] [게임, 또다른 마약] 게임 때문에… 아이는 망가지고 가족은 불화속으로

입력 2012.02.03 03:05 | 수정 2012.02.03 18:42

[4] 평범한 가정도 '게임과 전쟁'

최성훈(가명·20)군은 서울 강남 A고교에서 고2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공부만 하던 최군이 걱정스러웠던 최군의 어머니가 종종 "게임이라도 하며 친구들과 어울려라"면서 아들을 굳이 밖으로 내몰 정도로 최군은 공부밖에 몰랐다. 그러나 고2 겨울방학 때 '게임 고수'인 친구를 만나면서 최군은 달라졌다.

3D의 화려한 화면에 현혹된 '공부 1등'은 온라인상에서 숱한 게임의 고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쉽게 '무림의 고수'를 꿈꾸는 아이로 변해버렸다. 학교를 빠지지는 않았지만 밤 10시쯤 집에 돌아오면 새벽 서너 시까지 게임에 매달렸다. 내신 1등급이던 성적은 고3 들어 얼마 안 가 3등급으로 추락했다.

평생 '1등 아들'이라며 최군에게 간섭 한번 하지 않던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최군도 고함을 지르며 반발했다. 불화가 깊어지면서 부자(父子) 간의 대화는 지금 완전히 끊겼다. 아버지는 게임이라도 해보라고 권했던 부인에게 "도대체 애를 어떻게 가르쳤느냐"고 소리쳤다. 아들문제 때문에 부부는 이혼 위기까지 치달았다.

최군은 지난해 서울 중위권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했고, 지금은 2012학년도 대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최군의 어머니는 "게임이 아들을 얼마나 망쳐놓았는지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아들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요즘 중·고생, 특히 아들을 둔 가정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게임이다. 게임 때문에 자녀들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가정은 거의 없을 정도다. 부모들은 "없어진 아이를 찾아 동네에 있는 모든 PC방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컴퓨터 키보드를 숨기고 출근했는데 돌아와보니 찾아내 게임을 하더라"며 걱정을 나눈다.

실제로 한국 청소년들의 컴퓨터 게임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5~24세까지 청소년층의 게임시간을 국제 비교한 결과 한국은 하루 평균 46분으로 미국(25분), 독일(13분), 핀란드(10분), 스웨덴(9분), 영국(6분)보다 두 배에서 여덟 배까지 길었다.

서울시내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 PC방은 밤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게임에서 아이들을 떼어놓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주부 강지영(가명·47·서울 반포동)씨는 2년 전부터 노트북 컴퓨터를 베개처럼 베고 잔다. 당시 고교 2학년이었던 아들이 게임에 너무 빠져들자 데스크톱 컴퓨터는 없애버리고 노트북은 필요할 때만 쓰게 하면서 엄마가 관리한 것이다. 밖에서도 게임을 못하게 하려고 현금은 주지 않았다.

컴퓨터를 돌려달라며 난리를 치던 아들이 며칠 후 잠잠해지자 강씨는 '작전'이 성공했다 싶어 기뻤다. 그러나 넉 달 후 아들의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나 자세히 살펴봤더니 팔목에 시퍼런 멍이 있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단체로 헌혈을 했다고 변명했지만 실은 헌혈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문화상품권'으로 PC방에 가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이나 헌혈을 했던 것이다. 강씨는 "그때 다행히 팔목의 멍을 발견해 아들을 게임에서 멀리하는 데 성공했고 올해 아들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면서 "아들 둔 친구들이 모이면 아이를 게임에서 떼어놓는 노하우를 교환하는 게 중요한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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