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또다른 마약 ③] 잔인하게 죽일수록 이기는 게임… 처음엔 식은땀, 나중엔 무덤덤

입력 2012.02.02 03:01

폭력 게임, 직접 해보니
점점 더 잔혹하게 - 눈 찌르고 머리 자르자 끔찍한 비명과 솟구치는 피… 심장·호흡도 덩달아 가빠져
무뎌지는 신경 - 게임 시작한지 2시간 지나자 새 흉기 얻을 때마다 호기심 "어떻게 죽일까" 흥분되기도
초등생도 쉽게 접촉 - 외국서 판매금지된 게임도 국내포털서 손쉽게 검색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점멸하는 음침한 복도. 뿔테 안경을 낀 마른 체격의 사나이가 철제(鐵製) 볼펜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간다. 모퉁이를 돌자 멀리 하얀 가운을 입은 병원 직원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내는 잠긴 문을 여느라 정신이 없는 직원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느닷없이 볼펜을 들어 목 오른쪽을 힘껏 찔렀다. 직원은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지만 사내는 피묻은 볼펜을 다시 움켜쥐고 태연한 표정으로 왼쪽 눈, 오른쪽 눈을 차례로 공격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직원의 눈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사내가 다시 직원의 복부를 3~4차례 더 찌르자 사내의 환자복과 두 손은 피범벅이 됐다. 더 이상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바닥엔 피가 흥건하다.

기자가 지난달 18일 밤 국내 한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300원을 내고 내려받아 체험한 '맨헌트2'(Manhunt2) 게임의 한 장면이다. 어두컴컴한 PC방에서 '첫 살인'을 마친 뒤, 게임을 잠시 멈추고 의자에 기대 헤드폰을 벗자 헤드폰 쿠션 부위가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호흡도 가빴다.

맨헌트2는 정신병 범죄자 수용시설에 갇혀 있던 주인공이 근무자와 동료 수감자 등을 살해하고 탈출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범죄자가 살해 대상자의 뒤를 들키지 않고 시간을 끌며 최대한 오래 따라갈수록 더 잔인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잔인한 장면'이 '포상(褒賞)'으로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게임 속에서 두 시간여 동안 10여명을 살해한 뒤부터는 새롭게 얻게 될 무기와 새로운 살인방법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고, 살인을 앞두고는 흥분되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제작된 이 게임은 작년 3월 국내 한 게임업체가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수입허가를 신청했지만 '등급외' 판정으로 수입금지됐다. 하지만 네이버·다음 등 국내 포털 검색란에 게임 이름을 입력하기만 하면 게임 영상과 사진이 포함된 결과물이 화면 가득 쏟아졌다. 두 포털 모두 이용자가 성인인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고, 잔인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외국게임 홈페이지를 링크까지 해두었다.

/그래픽 = 박상훈 기자 ps@chosun.com
/그래픽 = 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 마포의 한 PC방. 네 명의 초등학생이 왁자지껄 떠들며 총싸움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코앞의 적과 마주친 민호(가명·초등 5년)가 검지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마구 두드려 총을 난사했다. 총탄 중 한 발이 상대의 머리에 명중하자 '퍽'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민호가 조종하는 군인 역시 몇 발짝 가지 못하고 모퉁이 뒤에 숨어 있던 상대방이 휘두른 군용 칼에 난자당해 쓰러졌다.

이 게임은 국내 개발사가 만든 '서든어택'으로, 이용 연령은 '만 15세 이상'이다. '게임 속에서 상대를 죽이는 게 목적'인 게임은 14세 이하 어린이의 접속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이날 민호는 3시간 동안 1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PC방 아르바이트생 이모(22)씨는 "초등생들도 부모 주민등록번호로 만든 게임 아이디 하나씩은 웬만하면 갖고 있다"며 "초등생이지만 대놓고 포르노만 보지 않으면 (폭력 게임은) 그냥 못 본 체 넘긴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이 아닌, 오프라인 게임(패키지게임·프로그램을 한번 다운로드받아서 사용하는 게임)일 경우 부모의 주민번호를 도용할 필요조차 없다. 자동차로 무고한 행인을 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내용으로 폭력 게임의 대명사가 된 'GTA' 시리즈, 사람을 살해해 인육(人肉)과 장기(臟器)를 식량으로 삼는 내용이 포함된 '폴아웃' 시리즈 등은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지만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는 아무나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네이버 검색란에 '잔인한 게…'까지만 치면 '잔인한 게임 추천'이 자동으로 제시될 정도다. 같은 제목의 게시물만 수십여건이 모니터를 채운다. 1월 15일 '잔인한 게임 추천 좀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클릭하자 'sks****'라는 아이디의 이용자가 "잔인한 게임 추천, 플리즈 제발"이라고 써놓은 게 보였다. 그는 "고문게임 잔인하지도 않음. … 예를 들어 머리를 자른다든가 심장 도려낸다든가 눈알을 뽑든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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