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또다른 마약 ②] '게임 좀비'… 괴물처럼 변해가는 아이들

입력 2012.02.01 03:01 | 수정 2012.02.01 18:32

게임과 현실 구분못해 폭행, 자살, 살인까지… 청소년 14만명 '高위험군'
칼싸움 게임 중독된 명문대 중퇴생, 갑자기 거리로 뛰쳐나와 행인 살해

김철수(가명·55·대구 수성구)씨 부부는 올해 초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게임 속 캐릭터인 '괴물'을 죽이겠다며 칼을 들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아들(23)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들은 3년 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게임에 빠져 학교에 나가지 않다가 제적됐다.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김씨 부부가 끓인 속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컴퓨터를 없애버리고, 24시간 감시도 해보고, 울면서 설득도 했지만 게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학교에서 제적되고 부모도 포기하자 아들은 낮에는 잠자고 밤에 일어나 게임하는 '게임 좀비'가 됐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다 끊고 집에만 틀어박혀 며칠 동안 게임만 하다가 쓰러져 잠들기도 했고, 밥도 거의 먹지 않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먹었다. 어느날 아들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들어가 보니 아들은 칼과 흉기를 들고 괴물을 없앤다며 여기저기를 찌르고 있었다.

김씨 부부는 그길로 집을 나와 게임중독상담센터에 연락을 했지만 상담으로 치유할 단계를 넘어섰다는 말에 절망해야 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게임 중독은 서서히 진행되다가 갑자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게 대부분이어서 가족도 알아채기 힘들다"며 "(부모들이)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하는 게 문제를 더 키우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게임 중독 증상을 앓으며 자살하거나 게임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해 각종 범죄를 일으키는 '게임 좀비'들이 우리 가정과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2010년 11월에는 한 중학생이 게임을 못하게 꾸짖는 어머니를 살해한 후 자살했고, 그해 3월에는 게임에 빠진 젊은 부부가 갓난아기를 방치해 굶어죽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3월에는 게임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겪던 고교생이 입학식날 투신자살했고, 11월에는 게임 중독 의사가 만삭의 부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온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잠재적인 '게임 좀비'들은 9~19세 청소년층에만 14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0년 실시한 ‘인터넷 중독실태 조사'에 따르면 9~19세 청소년 중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은 87만7000명(12.4%)에 달하고, 이 중 고위험군은 전체의 3.1%인 21만8000명이었다. 청소년은 인터넷 사용자의 65.2%가 게임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응답, 약 14만명이 잠재적 '게임 좀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은 게임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2010년 12월에는 칼싸움 게임에 중독된 미국 명문대 중퇴생이 서울 잠원동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무조건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지나가던 행인을 느닷없이 살해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서든어택'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 5명이 친구 한 명을 집단 폭행하고 엉덩이에 라이터 불을 대는 등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안동현 한양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1990년대 본드·가스를 마시는 학생들로 학교가 몸살을 앓았는데 요즘은 그게 게임으로 옮아갔다"며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된 학생은 사회적·교육적 문제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해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좀비(Zombie)

주술(呪術)로 살려낸 시체. 걷고 움직이지만 이미 시체이므로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 1932년 영화 '화이트좀비'를 시작으로 많은 좀비 관련 영화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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