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자들은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의 뇌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와 같으며, 인지능력과 감정조절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고 심한 경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같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게임이 우리 아이들의 뇌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이 아이들에게 해로운지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게임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운동능력을 키운다는 긍정론도 있었지만, 아이의 뇌가 게임으로 망가진다는 반대논리도 거셌다. 논란은 2010년 미국의 대법원에서까지 벌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아동의 뇌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유력 과학전문지인 네이처가 발행하는 정신의학 전문저널 '트랜스레이셔널 사이키애트리(Translational Psychiatry)'에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의 뇌가 마약중독에 빠진 것처럼 변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비디오 게임이 뇌를 바꾼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처음 규명된 것이다.
벨기에 겐트대 시몬 쿤(Kuhn) 박사가 이끈 국제공동연구진은 벨기에·영국·독일·프랑스·아일랜드에서 14세 청소년 154명의 뇌를 촬영했다. 뇌 촬영 결과 조사대상의 평균치(일주일에 9시간)보다 게임을 더 많이 한 청소년의 뇌는 왼쪽 줄무늬체가 훨씬 커져 있었다. 이 부분은 쾌락을 요구하는 뇌의 보상중추로, 마약중독에 빠지면 커진다.
지난 11일 중국 상하이정신건강센터는 '공중과학도서관(PLoS) 원'지에 게임에 빠진 인터넷 중독자들의 뇌에서 백질 손상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백질은 감정처리·주의집중·의사결정·인식조절을 담당하는 영역을 연결하는 신경섬유로, 코카인 같은 마약에 중독되면 손상된다.
국내에서도 2009년 비슷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김상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핵의학과)는 게임중독자는 코카인 중독자처럼 뇌 안와전두피질(안구 주변의 전두엽 피질)의 기능에 이상이 있음을 밝혔다. 김 교수는 "안와전두피질은 합리적 의사결정·충동성 조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영역"이라며 "게임이나 마약중독자는 이곳에 이상이 생겨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의 이득만 추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게임중독이 뇌를 바꾸면 행동도 달라진다. 김영보 가천의대 교수는 "전두엽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자극을 자제한다"며 "게임이 주는 단기적인 쾌락자극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 전두엽이 정상적인 반응을 하지 못해 잘 참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ADHD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독일 본대학 연구진은 '생물 심리학'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주일에 평균 15시간 동안 일인칭 슈팅 게임(총기를 조준해 발사하는 게임)을 하면 뇌의 가운데 전두엽 부분이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활동이 약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운데 전두엽은 공포나 공격성을 조절하는 영역이다. 게임이 뇌를 폭력에 둔감하게 만든 것을 실제로 확인한 것이다.
국내 뇌과학자들은 "게임중독은 일방적 규제로는 근원적 해결이 어렵다"며 "정부와 게임업체가 손을 잡고 폭력 게임이 아이들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연구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