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76.2㎝, 세로 228.6㎝, 족자 형태의 한지 위에 푸른 모란이 그득하다. 빛 고운 원앙 한 쌍이 모란 곁을 노닌다. 작품 제목은 'Bless this house(이 집을 축복하라)'(2010·세부 사진). 부부의 금실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우리 민화를 패러디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 집단 아미시(Amish) 공동체의 민속품에서 착안한 것이다.
"필라델피아의 아미시 마켓에 갔더니 오색 새로 장식된 민속품을 팔고 있더군요. 행운을 상징한다는 그 새가 우리나라에서는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원앙을 닮은 데서 작품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내달 1일부터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서 개인전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여는 재미 작가 문지하(39)는 작품에 아미시 전통의 오색 새 문양과 아미시 가정에 흔히 걸려 있는 팻말 'Bless this house'의 형태를 집어넣고, 부모님의 이불에서 잘라낸 원앙 무늬와 모란을 추가했다. 근원이 다른 두 문화의 상징을 뒤섞은 것은 '미국 땅의 이국인'으로서 아미시 공동체에 대해 그가 느끼는 동질감의 표현이다. 문지하는 "아미시는 미국에서 '펜실베이니아 더치(Pennsylvania Dutch·독일계 펜실베이니아 사람)'로 통칭된다. 한국인인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영원한 이방인인 셈"이라고 말했다,
문지하는 고려대 미술교육과와 이화여대 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미국 아이오와 미대로 유학 갔다. 2002년 미국인 남편과 결혼, 현재는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문화의 혼재와 교차. 이는 13년간 이국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 'Where are you from?(어디 출신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이다.
가령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부채 그림'은 한지를 둥그스름한 부채 형태로 자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것. 한국 부채에서 형태를 따 온 것이지만 작품을 본 미국인들은 "미국 남부에서 여름 장례식 때 문상객들에게 나눠주는 부채가 생각난다. 그 부채에도 마틴 루서 킹이나 마돈나 등 그림을 그려넣는다"며 신기해했다.
작가는 "한국인은 빨강과 파랑의 조합에서 태극(太極)을 연상하지만 미국인은 수퍼맨의 옷차림을 떠올리더라. 똑같은 상징에 대한 각 문화권의 시각차가 내 주된 관심사"라고 했다. 전시는 3월 11일까지 (02)723-6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