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전문(前文)과 10대 약속 23개 정책으로 이뤄진 새 정강(政綱)정책을 '국민과의 약속'이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국민과의 약속'은 나라의 목표를 이전 정강정책의 '선진화'에서 '국민행복국가'로 바꾸었다. 이와 함께 '큰 시장 작은 정부' '관치경제 청산' '집단이기주의와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에 맞선다'는 표현들을 삭제하는 대신,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경제 민주화'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 삶을 책임지는 강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 성장률 대신 고용률을 국정 핵심지표로 삼았다.

복지와 고용을 앞세우는 '국민행복국가'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대선 슬로건이다. 집권당에 등 돌린 중간층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한 정책 전환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성장과 복지, 시장과 정부, 자유와 평등, 효율과 형평,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대북 정책에서도 '원칙에 입각한 유연한 정책'을 표방하고 북한 인권 개선과 개방 촉진을 추구한다면서도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대목은 뺐다. 우리가 앞장서 북한 체제를 뒤엎으려 한다는 느낌을 주어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국민과의 약속'은 성장보다는 복지, 시장 자율보다는 정부 개입, 자유보다는 평등에 더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종전 정강정책에 담겨 있던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 '근로의욕과 기업가 정신' '하향 평준화의 지양' 같은 자유사회의 역동성(力動性)을 강조하는 표현들은 크게 줄거나 뒷전으로 밀렸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의 심화와 그에 따른 계층 간 대결의 첨예화로 지난 30년 세계 경제를 이끌어왔던 신자유정책의 폐해가 드러났고, 그 결과 자본주의는 중대한 방향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수선해야 하는 건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시장지상주의의 폐해다. 폐해를 시정한다면서 시장의 활력까지 죽이게 되면 복지국가를 뒷받침할 동력(動力)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경제 민주화를 한다고 정부와 정치인들이 나서서 개인과 개별 기업들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짓밟는 분위기가 당연시되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미국 공화당이나 영국 보수당도 '따뜻한 보수' '유연한 보수'를 내세우며 달라진 국민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수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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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토론] 한나라당이 발표한 '국민과의 약속',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