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년 전인 1992년 1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창(武昌·지금의 우한)역 1번 플랫폼에 베이징에서 달려온 중국 고위층 전용열차가 멈춰섰다. 이어 오리 혀 모양의 짧은 챙 모자에 진회색 외투를 걸친 단구(短軀)의 노인이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88세의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마중나온 후베이성 당서기 등 이 지역 지도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걸으면서 얘기나 하자"고 했다. 길이 500m의 짧은 플랫폼을 네 번 오가는 동안 섰다 멈췄다 하면서 덩샤오핑은 수행기자들이 감히 베이징 본사로 보고하기도 두려운 말들을 쏟아냈다.
"좌경(左傾)도 사회주의를 망치고, 우경(右傾)도 사회주의를 망친다. 우경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금은 주로 좌경을 방지해야 한다."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생산력 발전과 종합국력의 증강, 인민 생활수준 향상에 유리한가 하는 점이다." "사회주의를 견지하지 않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가 발전하지 않고, 인민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뿐이다." 29분 동안 이런 말을 쏟아낸 덩은 다시 열차에 올라타고 중국 남단의 경제특구인 선전(深�q)으로 향했다.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은 '남순강화(南巡講話)' 첫날의 첫 일정이었다.
1990년대 초반 중국은 개혁·개방의 지속 여부를 놓고 좌·우파 간에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였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농업생산력은 크게 높아졌지만, 시장경제 도입 과정에서 갖가지 부작용이 불거진 탓이다. 계획경제 속의 가격 자유화는 한 해 20% 가까운 물가 앙등을 불렀다. 생필품 배급권을 쥔 일선 관료들의 부패도 극성을 부렸다. 급기야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 사태가 터졌고, 당내 좌경 보수파는 개혁·개방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왔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더 대담하게 시험하고 돌파하라"고 외쳤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줄줄이 무너지고, 독재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던 당시 상황에서 개혁·개방의 중단은 곧 공산당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姓資姓社]'는 이념의 딜레마에 갇혀 있는 중국공산당 관료들을 향해 "계획경제가 사회주의는 아니며,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인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 계획과 시장은 경제수단일 뿐이다"고 말했다.
남순강화 20주년을 맞은 중국에서는 '제2의 개혁·개방'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산업구조 조정, 국영기업 민영화, 농촌의 토지개혁, 행정 민주화 등 어느 분야에서도 속시원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주택·의료·사회보험 등 민생 안정을 위한 제도발전도 속도가 더뎠다. 이런 가운데 각 계층의 이익 욕구는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지금이 남순강화 당시인 1990년대 초만큼이나 위기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기록을 살펴보면서 왠지 그의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념과 증오, 격정이, 한국이 부딪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무엇이 유리하냐는 냉정한 현실인식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입력 2012.01.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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