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이 지난 18일 개봉한 지 일주일도 안 돼 90만6000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에게 석궁을 쏜 사건을 각색한 영화다. 김씨는 학교 측의 재임용 거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자 석궁에 화살 한 발을 장전해 담당 재판장 집을 찾아갔다. 그는 재판장에게 석궁을 쏴 배에 상처를 입힌 죄로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영화는 재판 과정에서 나온 김씨 주장들을 그대로 따랐다. 김씨는 "재판장과 몸싸움을 하다 우발적으로 화살이 발사됐고 재판장은 화살에 맞지도 않았는데 자해(自害)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검·경이 증거를 조작해 내가 일부러 활을 쏜 것으로 몰았고 법원도 그대로 인정했다"고 했다. 법원은 "김씨가 범행 두 달 전부터 일주일에 60~70발씩 석궁 발사 연습을 했고 재판장 집을 7차례 답사했으며 범행 때 석궁 발사 안전장치가 풀려 있어 일부러 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결했다.
재판 문제를 다룬 영화가 일주일 사이 100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은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깔려 있는 사법부 불신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도가니'처럼 '부러진 화살'에도 사실이 아닌 허구(虛構)가 섞여 있다. 이 영화가 '기록 영화'가 아닌 한 그건 크게 나무랄 일이 못 된다.
우리 법원의 권위는 유신·5공 등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권위주의 정권 시대 때의 시국·공안 사건 재판에서 독재 정권의 주문(注文)대로 판결한 전비(前非)가 쌓여 가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지금 법원이 부딪친 신뢰 위기는 권위주의 정권이 끝났는데도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뼈아픈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관예우가 법원 신뢰를 갉아먹는다고 그렇게 비난하는데도 판사들은 퇴직하면 으레 마지막 근무지에서 개업해 전관 대접을 받으며 몇 년 만에 수십억원씩 버는 비상식적 행동을 끊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국민 머릿속에 유전무죄·무전유죄가 공식(公式)처럼 새겨진 건 당연했다. 판사들은 말단 직원에겐 2억~3억원만 횡령해도 실형을 선고하면서 대기업 오너는 수백억, 수천억원을 횡령해도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있다.
독재 정권이 물러간 요즘 법원은 권력이 아닌 금력(金力)에 무릎을 꿇은 듯한 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러진 화살'에 관객들이 줄을 서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경고이자 사법부의 재생(再生)을 위한 결단을 촉구하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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