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면서 정·재계에 출총제 부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2009년 3월 국회에서 폐지된 지 2년10개월 만이다.

출총제는 최근 민주통합당도 부활을 추진키로 했고, 작년 8월에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출총제는 순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은 계열사에 대한 출자 한도를 순자산의 40%까지로 제한하는 규제였다. 출총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재벌 규제 수단으로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가 화두인 요즘 정치권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주제인 셈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출총제 폐지를 놓고 정부와 재계가 줄다리기를 했었다.

정치권 움직임에 대해 재계와 정부는 "출총제 부활이 대기업 투자만 위축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해 당사자인 대기업은 그렇다하다라도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도 "두 번 죽었던 출총제를 다시 꺼내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반응이다. 공정위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관행, 백화점 과다 수수료 등에 대해서는 칼을 대고 있지만 출총제 부활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재벌 규제 수단으로 실효성 없어

정치권의 출총제 부활 논리는 출총제 폐지 이후 대기업의 계열사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 실제 자산 총액이 5조원이 넘는 대기업 그룹 계열사는 2009년 1137개에서 작년 1554개로 급증했다.

하지만 재계와 전문가들은 출총제를 부활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2009년 출총제 폐지 당시에도 순자산이 10조원이 넘는 대기업 그룹은 10개 그룹에 불과했고 나머지 기업들은 출총제하에서도 무한정 계열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게다가 LG·SK·GS·LS그룹 등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은 출총제 적용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지금 출총제를 부활하더라도 실제 규제를 받는 그룹은 삼성·현대차·롯데 등 4~5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현대차 같은 대기업 그룹은 출자 규모가 순자산액의 40%인 규제 상한선에 크게 못 미친다"며 "출총제가 부활하더라도 제과점이나 고급 음식점 같은 소규모 회사는 수 백개씩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출자 규모가 순자산액의 11%, 현대차그룹도 18%밖에 안 된다. 소규모 계열사가 많은 롯데그룹도 11%에 불과하다.

특히 대기업 오너가 개인적으로 투자를 해 법인을 설립할 때에도 출총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오너 개인이 회사를 세운 뒤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몰아받아 기업을 키우는 행태를 규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출총제 핑계로 국내 기업 해외 이탈 우려도

출총제를 부활했다가 대기업 투자만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출총제가 국내 투자에 적용될 뿐 해외 투자나 해외 기업을 인수할 때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숭실대 전삼현(법학과) 교수는 "서민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핵심 과제인 상황에서 출총제 부활은 이를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출총제를 핑계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근로자 임금이 싼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의 고위 임원은 "정부와 여론의 눈치만 없으면 지금이라도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려는 대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출총제를 재벌 규제의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내부거래 감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주주 책임 강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2002년 출총제를 폐지하면서 한동안 우리나라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출총제 규제를 했고 그나마도 실효성이 없었다"며 "그러니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출총제 부활'이 아닌 '출총제 보완'이라는 표현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출자총액제한제도

대기업 집단(재벌그룹)이 순자산의 일정 비율까지만 계열사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한도를 두는 제도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1987년 처음 도입됐다. 계열사 출자 한도는 당초 40%였지만 1994년 25%로 강화됐다. 외환위기 직후 규제 완화를 이유로 폐지됐지만 DJ정부에서 재벌그룹의 문어발식 확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2001년 부활했다. '대기업의 투자를 막는다'는 비판이 일어 2007년에 다시 출자 한도를 25%에서 40%로 완화했고, 현 정부 출범 후 2009년 3월 다시 폐지됐다.